“9177억 실탄 vs 이사회 장악”…고려아연 주총, 2년 분쟁의 결산 무대
배당·집중투표제·감사위원 확대까지…2024~2025 갈등 쟁점 한꺼번에 재등장
행동주의·상법 개정 시험대 오른 표심…기관투자자 선택이 향방 가른다

이익잉여금 9177억 전환·집중투표제·감사위원 확대까지…2024~2025 주총 쟁점 모두 재등장
오는 3월 정기주주총회를 앞둔 고려아연의 안건 구성이 사실상 지난 수년간 이어진 경영권 분쟁의 축약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 측과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각각 제시했던 요구 사항들이 하나의 테이블에 올라오면서, 올해 주총은 단순 안건 승인 여부를 넘어 ‘지배구조 방향성’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고려아연은 이익잉여금 9177억원 전환과 주당 2만원 배당,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 집중투표제 이사 선임 등 복수의 거버넌스 안건을 확정했다. 특히 영풍·MBK 측 제안 상당수를 수용하면서도 더 큰 규모의 주주환원안을 제시해 정면 승부 구도를 만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올해 주총을 이해하려면 2024년 정기 주총과 2025년 임시 주총에서 누적된 갈등 구조를 함께 봐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 올해 주총 키워드, 과거 쟁점의 ‘총집합’
이번 주총 안건은 크게 세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는 주주환원 정책 경쟁이다. 회사 측은 임의적립금보다 두 배 이상 많은 9177억원을 미처분이익잉여금으로 전환해 배당 여력을 확보했다. 이는 과거 배당 규모를 둘러싼 갈등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된다.
둘째는 이사회 구조 개편이다. 분리선출 감사위원 확대와 집중투표제 이사 선임은 개정 상법 흐름과 맞물리지만, 동시에 이사회 구성권을 둘러싼 양측 전략이 직접 충돌하는 영역이다.
셋째는 이사 충실의무 명문화와 비밀 유출 고소다. 회사가 영풍·MBK 측 인사를 영업비밀 유출 혐의로 고소하면서, 단순 표 대결을 넘어 법적 리스크까지 주총 이슈로 번진 모습이다.

■ 2024년 정기 주총…배당·유상증자 갈등의 출발점
현재의 갈등 구조는 2024년 정기 주주총회에서 본격화됐다.
당시 고려아연은 주당 5000원 배당안을 제시했지만 영풍 측은 배당 정책이 소극적이라며 반대했다. 표면적으로는 배당 규모 논쟁이었지만, 실제로는 자본 배분과 경영권 방어 전략을 둘러싼 시각 차이가 충돌했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제3자배정 유상증자 대상을 확대하려던 정관 변경안이 부결된 사건은 이후 분쟁의 분수령으로 꼽힌다. 회사는 전략적 투자 유치와 신사업 추진을 위한 제도 정비라고 설명했지만, 영풍 측은 지분 희석을 통한 우호세력 확보 시도로 해석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때부터 양측의 갈등은 배당 정책, 자본정책, 정관 변경 등 주총 안건 전반으로 확산됐다.
■ 2025년 임시 주총…‘이사회 전쟁’으로 격화
갈등은 2025년 1월 임시 주총에서 정점에 달했다.
영풍·MBK 연합은 신규 이사 14명 선임과 집중투표제 도입을 추진하며 이사회 장악을 시도했고, 회사 측은 우호지분 확보와 의결권 제한 전략으로 맞섰다. 표 대결 끝에 주요 안건이 부결되면서 최윤범 회장 측은 경영권 방어에 성공했지만, 이후 법적 공방이 이어지며 분쟁은 장기화됐다.
특히 순환출자 구조를 활용한 의결권 제한 조치가 논란이 되며 가처분 신청과 소송이 잇따랐다. 이 사건은 국내 자본시장에서도 드물었던 ‘의결권 제한을 통한 경영권 방어’ 사례로 평가된다.
■ 올해 주총, 과거 갈등의 결산인가…새로운 출발인가
업계에서는 이번 주총이 단순히 양측 제안이 병존하는 이벤트가 아니라, 지난 2년간 이어진 갈등의 결산 무대라는 시각이 많다.
회사 측은 주주환원 확대와 ESG 거버넌스 강화, 독립이사 요건 명확화 등을 내세우며 ‘글로벌 스탠다드’ 전환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영풍·MBK 연합은 이사회 구조 개편과 집행임원제 도입을 통해 경영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표심은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확대, 배당 정책 방향성에 대한 기관투자자 판단에 달릴 전망이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이번 고려아연 주총은 개정 상법 이후 한국 기업 주총의 축소판”이라며 “배당, 집중투표제, 이사 충실의무까지 모두 겹치면서 향후 다른 기업 주총 전략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올해 고려아연 주총이 ‘한국형 행동주의 분쟁 교과서’인 이유
올해 고려아연 정기주주총회는 단순한 경영권 분쟁을 넘어 개정 상법 이후 한국 자본시장에서 나타나는 구조 변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배당 확대와 이익잉여금 전환, 집중투표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이사 충실의무 명문화 등 주요 안건이 모두 최근 몇 년간 국내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요구해 온 의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회사 측이 영풍·MBK 연합의 일부 주주제안을 수용하면서도 더 큰 규모의 주주환원안을 내놓은 점은 ‘공격적 행동주의에 대한 선제 대응’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과거에는 행동주의 펀드가 별도 안건을 상정하고 회사가 이를 방어하는 구조였다면, 이번에는 경영진이 먼저 주주환원 확대를 제시하며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전략이 읽힌다.
이사회 구조 역시 핵심 변수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확대는 소수주주 권익을 강화하는 제도로 평가받지만, 실제 주총에서는 어느 세력이 이사회를 장악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2025년 임시 주총에서 이사 선임을 둘러싼 표 대결이 벌어졌던 만큼, 올해도 기관투자자와 외국인 주주의 의결권 방향이 최대 변수로 꼽힌다.
또 하나의 특징은 법적 리스크의 전면화다. 영업비밀 유출 고소와 이사 충실의무 명문화는 단순한 지배구조 개선을 넘어 ‘이사회 책임 강화’라는 흐름을 보여준다. 이는 향후 국내 기업들이 분쟁 국면에서 법적 책임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이 늘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