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美 동맹의 탈을 쓴 의결권 계산서…고려아연의 ‘꼼수’ 돌려막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고려아연]

고려아연의 미국 제련소 투자와 합작법인(JV) 설립은 산업 전략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본질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의결권 계산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과정이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정면으로 건드릴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상법은 이사가 회사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해 충실하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번 JV 구조를 보면, 회사의 장기 가치보다 특정 경영인의 주총 승리와 의결권 확보가 우선 고려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짙다. 미국 정부가 참여한 JV에 신주 10%를 배정하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기존 주주의 지분을 희석시키는 결정이다. 그럼에도 이사회가 주주가치 훼손 여부를 충분히 검토하고, 대안 시나리오를 공개적으로 논의했는지는 불투명하다.

특히 논란의 핵심은 이사회가 사실상 ‘패싱’됐다는 지적이다. 경영권 분쟁이라는 민감한 국면에서, 11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해외 투자와 지배구조 변동이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이사회 다수가 최윤범 회장 측 인사로 구성된 상황에서, 독립적 검증과 반대 의견 개진이 실질적으로 작동했는지에 대해 시장은 강한 의문을 갖고 있다. 영풍 측이 “졸속 처리”와 “사회적 설명 부족”을 문제 삼는 이유다.

더구나 JV 투자금 조달 구조를 보면, 미국 측은 지분을 확보하는 반면 재무적 부담의 상당 부분은 고려아연이 연대보증과 차입으로 떠안는다. 위험은 회사가 지고, 의결권 효과는 경영진이 누리는 구조다. 이는 이사가 회사 이익보다 자신의 지배력 유지를 우선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긴다. 상법이 금지하는 ‘자기거래’나 ‘충실의무 위반’ 논란으로 비화될 수 있는 지점이다.

산업 전략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그 결정 과정이 투명하고 정당해야 정당성을 얻는다. 주주총회를 앞두고 신주 발행과 자기주식 소각을 병행하며 표 대결 구도를 유리하게 만드는 방식은, 글로벌 공급망 논리로 포장한다고 해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경영권 분쟁이 아니다. 이사회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이사의 충실의무가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묻는 사건이다. 미국이라는 ‘백기사’의 화려한 간판 뒤에 가려진 의결권 꼼수가 법정과 주총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시장은 이미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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