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을 얻지 못했지만 시장을 바꿨다…4년의 싸움, 그리고 100% 수익률로 끝난 실험
■ 편집자 주
한국 기업 지배구조의 흐름은 몇 번의 상징적인 사건을 통해 방향을 바꿔 왔다. SK–소버린 분쟁이 ‘외국계 행동주의’의 등장이라면, KCGI와 한진칼의 경영권 분쟁은 국내 행동주의 자본이 대기업 오너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첫 사례였다. 이 사건은 단순한 지분 싸움이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이 ‘주주 권리’라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시험한 사건이었다.![]()
■ 2018년, 조용히 시작된 전쟁
2018년 여름, 자본시장에는 낯선 이름이 등장했다. 사모펀드 KCGI, 그리고 강성부라는 펀드매니저였다. 당시 한진그룹은 오너 리스크와 지배구조 논란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시장에서는 주가 저평가가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지만, 누구도 공개적으로 경영권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KCGI는 달랐다. 그레이스홀딩스 등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한진칼 지분을 빠르게 매집했고, 곧바로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 단순한 투자자가 아니라 행동주의 주주로서 등장한 순간이었다.
처음 시장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재벌 지주사에 맞서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KCGI는 장기전이라는 전략을 선택했다.
■ ‘3자 연합’…경영권 분쟁이 전면전으로
2019년 조양호 회장이 별세하자 판은 완전히 달라졌다. 후계 구도가 흔들리면서 한진칼은 한국 자본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전장이 됐다.
KCGI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과 손잡으며 이른바 ‘3자 연합’을 결성했다. 오너 일가 내부 갈등까지 얽히면서 분쟁은 단순한 투자 이슈를 넘어 드라마 같은 전개로 이어졌다.
시장에서는 “한국판 엘리엇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행동주의 자본이 오너 체제를 실제로 흔들 수 있는지 시험대에 오른 순간이었다.
■ 2020년 주총, 승자는 누구였나
결정적 순간은 2020년 한진칼 주주총회였다. KCGI 연합은 이사회 장악을 노렸고, 조원태 회장 측은 산업은행이라는 강력한 백기사를 확보했다.
결과는 조원태 측의 승리였다. 경영권은 유지됐고, KCGI는 이사회 장악에 실패했다.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복잡했다. 분쟁 과정에서 한진그룹은 지배구조 개편과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했고, 이사회 독립성과 투명성도 강화됐다. 행동주의 펀드가 직접 경영권을 얻지 못했지만, 기업의 방향을 바꿨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였다.
당시 한 투자자는 이렇게 말했다. “주총은 졌지만, 게임의 규칙은 바뀌었다.”
■ 전쟁의 끝, 그리고 조용한 엑시트
시간은 KCGI 편이기도 했다. 지배구조 개선 기대감과 항공업 회복 기대가 맞물리며 한진칼 주가는 상승했다. 결국 2022년, KCGI는 보유 지분을 호반건설에 매각하며 4년 만에 투자금을 회수했다.
평균 매입가 대비 두 배 가까운 가격이었다. 배당과 레버리지 효과까지 고려하면 수익률은 100%에 근접했다.
경영권은 얻지 못했지만, 행동주의 투자로 수익을 실현한 첫 국내 사례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KCGI 측은 “지배구조 개선과 재무구조 안정화라는 목표가 상당 부분 달성됐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단순한 엑시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 남겨진 질문…한국 자본시장은 어디로
KCGI–한진칼 분쟁 이후 한국 자본시장에는 변화가 나타났다. 행동주의 펀드가 더 이상 ‘이단아’가 아니라 하나의 투자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국민연금과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논의도 한층 빨라졌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도 드러났다. 정책 금융기관의 개입은 한국형 자본시장에서 경영권 분쟁의 ‘보이지 않는 룰’을 보여줬다. 행동주의가 기업을 압박할 수는 있어도, 최종 승자는 여전히 오너와 국가 자본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 그래서, KCGI는 성공했을까
지금도 이 질문에는 답이 갈린다. 어떤 이들은 “경영권을 못 가져갔으니 실패”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한국 행동주의의 시대를 연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다. KCGI 이전과 이후의 한국 자본시장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이후 이어진 수많은 주주 행동주의와 지배구조 논쟁의 출발점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