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난 삼성家 로열 패밀리…그들의 마지막은 고독했다

왼쪽부터 이창희, 이재찬, 이재관씨 [사진=새한그룹]

1970년대 삼성판 ‘왕자의 난’의 시작은 사카린 밀수 사건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에게는 부인 박두을씨와 사이에 세 아들이 있었다. 첫째가 CJ그룹으로 분가한 이맹희 회장이며, 셋째는 삼성그룹을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이다. 그 사이에 이창희 회장이 있었다.

재벌가에서 벌어진 ‘왕자의 난’이라고 하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아들들의 싸움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1970년대 삼성그룹의 왕자의 난은 그에 못지않게 떠들썩했다.

그 도화선에 불을 붙인 사건이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이다. 삼성은 울산에 당시로서는 35만평 부지에 국내 최대 규모 비료 공장을 짓고 한국비료를 설립한다. 이병철 회장의 노력으로, 일본 미쓰이그룹이 자금을 투자하기로 했다.

당시 미쓰이는 삼성에 100만 달러를 리베이트로 제공하기로 했다. 당시 정치권도 이 돈에 욕심을 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이 돈을 합법적으로 들여올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현금 반입이 어려운 상황에서 대신 물품을 들여와서 판매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럼 100만 달러를 가지고 400만 달러를 벌 수 있는 상황이 된다.

정부의 묵인과 삼성의 주도로 양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스테인리스 판을 비롯해 팔릴만한 아이템은 모두 들어왔다. 여기에 수입 제한 품목인 사카린이 포함됐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1위 재벌 삼성의 밀수 범죄로 커졌다. 국회에서는 김두한 의원이 이를 비판하면서 본회의장 내에 오물을 뿌리는 사건도 벌어졌다. 국민 여론도 당연히 악화됐다.

드라마 야인시대의 한 장면 [사진=SBS 방송 캡쳐]

은퇴를 선언한 이병철…경영 전면에 나선 장남 이맹희


이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은 삼성그룹에서 물러나게 된다. 또한 알짜 계열사 한국비료는 국가에 빼앗겨 공기업이 됐다. 또한 둘째 아들 이창희 이사는 실형 선고를 받고 6개월가량 옥살이를 했다.

이후 삼성은 이맹희 부총수 체제로 돌아가고 있었다. 감옥에 다녀온 이창희 이사는 경영 전면에서 배제됐다. 그런 상황에서 이병철 회장은 복귀에 시동을 걸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창희 이사는 아버지의 복귀를 막고자 청와대에 편지를 보낸다. 아버지가 탈세, 외환도피 등 6가지 혐의가 있으니 조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사건을 무마하느라 이병철 회장은 대구대과 청구대를 박정희 대통령이 이사장인 영수장학회에 빼앗긴다. 그 대학이 현재 영남대다.

이병철 회장 [사진=삼성]

단명한 이창희 부자…두 아들도 비극적 최후


이 일로 이병철-이창희 부자는 연을 끊게 된다. 이병철 회장은 직접 둘째 아들에게 “눈 앞에 얼씬도 하지 말라”며 추방을 선언한다.

후 이창희 회장은 미국으로 출국했다. 돌아온 뒤에도 집안과 교류를 하지 않았다. 이는 자식 대까지 이어져 그의 자녀들도 집안 행사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투서 사건의 여파는 장남 이맹희 회장에게도 돌아갔다. 아버지의 의심을 받게 된 것이다. 이맹희 회장 역시 자신을 몰아내는데 앞장섰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작용했다.

전직 삼성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의 장인인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이 이맹희를 둘러싼 유언비어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셋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후계 구도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는다. 이후 이창희 회장은 자기 사업을 하게 된다.

1973년 미국 마그네틱 미디어와 합작으로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플로피 디스크 등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또한 1977년 새한전자를 인수했고 새한미디어로 키웠다.

1991년 이창희 회장은 혈액 암으로 5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후 일본인인 부인과 아들들이 경영 전면에 나섰다.

1995년 삼성그룹에서 제일합섬을 넘겨받기도 했다. 새한그룹이 재계 20위에 오른 이유다.

그러나 1997년 닥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룹은 무너졌다. 새한은 웅진그룹에 넘어가면서 웅진케미칼로 사명을 변경했고, 도레이새한도 사명을 도레이첨단소재로 바꾼 채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새한이라는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창희 회장의 부인은 이영자라는 한국명을 썼으나 본명은 나카네 히로미(中根裕美)다. 둘 사이에는 3남 1녀가 있다.

둘째 아들인 이재찬씨는 2010년 46세의 나이로 서울시내 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동네 가게에 외상 빚을 질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렸다. 

장남인 이재관씨도 59세의 나이로 지난달 숨졌다.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삼성 관계자는 “이병철 회장이 일본 며느리를 들이는데 반대가 심했다”면서 “그 자신이 일본 여성을 현지 처로 둔 상황에서 일본에 유학 중인 아들마저 일본 여성과 결혼하면 웃음거리가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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