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독립성·전문성·자본생산성…기대치 못 미치면 행동주의 압박 더 거세질 것”
글로벌 스튜어드십 격변 속 한국 기업, ‘거버넌스 실력’ 시험대 오른다

■ “투자자는 형식이 아닌 실질을 본다…한국 기업 ‘거버넌스 시험대’”
“지배구조 규범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놀라운 속도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더 이상 형식을 보지 않습니다. 실질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사회 역량, 자본 생산성, 보상체계가 실질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행동주의 압박을 피할 수 있습니다.”
내년 주주총회를 앞두고 한국 기업들이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이뤄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20일 오후 3시 ISS 코퍼레이트-법무법인 광장 공동 세미나가 광장 사옥에서 열렸다.
이날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의 준 프랭크(Jun Frank) 매니징 디렉터는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는 더 이상 형식적 개선으로는 투자자의 기대를 충족할 수 없는 국면에 들어섰다”고 진단했다. 2025년 주주총회 시즌의 흐름과 글로벌 스튜어드십 변화, 행동주의 확대 등을 종합적으로 짚으며 “2026년에는 이사회 전문성·자본효율성 등 ‘실질적 거버넌스’에 대한 요구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이사회 독립성은 개선…그러나 CEO 겸직·전문성·임원보상 등은 여전히 미흡”
프랭크 디렉터는 한국 상장사 100대 기업을 기준으로 “ISS 기준 이사회 독립성 지표가 56~58%로 2%포인트 개선됐고, 여성 이사는 거의 두 배로 늘었다”며 긍정적 변화를 언급했다. 이사 선임안 지지율은 평균 95%로 올랐고 ISS의 이사 반대 권고율도 2021년 16%에서 2025년 12%로 낮아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구조적 한계를 지적했다.
“KRX 100기업의 절반이 여전히 CEO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여성 이사는 평균 1.5명 수준에 그치고, 사외이사들의 업계 경험·재무 전문성도 글로벌 기준에 크게 못 미칩니다.”
특히 그는 한국 기업 사외이사의 임기 중간값이 3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임기는 짧고 업계 경험은 부족하면 경영진을 제대로 모니터링하거나 견제하기 어렵습니다. 이는 투자자의 신뢰가 가장 약해지는 지점입니다.”
■ 주주행동주의 ‘폭증’…“300건 돌파, 캠페인 정교화·표 대결 급증”
2025년 주총 시즌의 특징으로 그는 “한국의 행동주의가 기록적인 수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ISS 분석에 따르면 올해 주주제안은 300건을 훌쩍 넘었고, 특히 주주 추천 이사 후보 분석 건수는 2024년 26명에서 2025년 187명으로 급증했다.
“투자자들은 더 정교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 자본 효율성, 이사회 구성, 보상체계 등 핵심 지배구조 요소에 닿는 이슈라면 공격의 강도는 더 높아질 것입니다.”
■ 글로벌 스튜어드십의 격변…“ESG 정치화·패스스루 확산·의결권 다중화”
그는 글로벌 스튜어드십 환경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며 한국 기업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세 가지 변화를 짚었다. 먼저 미국에서 ‘반(反) ESG)’ 주주제안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지지율 자체는 평균 1% 수준에 불과하지만, ESG가 정치적 논쟁의 장으로 변하면서 기업들이 상충하는 이해관계 속에 놓이고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대형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조직이 세분화되는 흐름을 강조했다. 뱅가드·블랙록·SSGA 같은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은 하나의 스튜어드십 팀이 일관된 의견을 내던 기존 구조에서 벗어나, 서로 다른 관점을 가진 여러 팀을 내부에 병존시키고 있다. 그 결과 같은 기관이라도 안건별로 서로 다른 의결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으며, 기업 입장에서는 투자자의 기대와 방향성을 읽어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하나의 흐름은 패스스루(pass-through) 프로그램의 확대로 요약된다. 이는 인덱스 펀드 투자자에게 직접 의결권 행사를 선택하도록 허용하는 제도인데, 현재로서는 AUM 비중이 크지 않아 단기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확산될 경우 기업은 “누가 실제 의결권을 쥐고 있고 어떤 기준으로 표심이 결정되는지”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워지는 구조가 된다. 그는 “의결권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기업은 그동안 사용해온 투자자 분석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ISS·글래스루이스 등 자문사 역시 고객의 세분화된 수요에 맞춰 새로운 솔루션을 출시하며 정책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한국 기업의 최대 리스크는 ‘이해상충·인센티브 부재’…임원보상 공시 확대 필요”
그는 한국 기업이 글로벌 대비 가장 뒤처진 영역으로 임원보상 구조를 꼽았다.
“임원보상은 주주와 경영진의 이해를 일치시키는 핵심 장치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고정급 위주, 공시 제한적, 성과 연동성 부족으로 유명합니다.”
ISS 분석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한국 기업의 임원 보상과 총주주수익률(TSR)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
“즉 경영진이 주주가치를 높였든 못했든 ‘보상은 비슷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글로벌 투자자들에겐 즉각적인 경고 신호입니다.”
■ “26년 주총 시즌 핵심은 ‘전문성·자본생산성·인센티브’…미흡하면 행동주의 타깃”
준 프랭크 디렉터는 내년(2026년) 주총 시즌의 핵심 평가축이 이사회 전문성, 자본생산성, 그리고 보상·지배구조의 이해 일치로 이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사회는 이제 독립성과 다양성을 넘어 전문성의 믹스가 실제로 회사의 전략과 맞물려 있는지가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외형적 구성보다 기업의 사업 구조와 리스크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전문적 역량이 필수라는 의미다.
또한 그는 자본생산성이 투자자의 가장 엄격한 질문 리스트에 올라섰다고 지적했다.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업이 보유한 자본을 얼마나 생산적으로, 그리고 어떤 전략적 기준에 따라 활용하는지를 납득 가능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즉 자본을 투입한 결과가 ROE·TSR·신규 성장동력 확보 등으로 이어지는지를 기업이 스스로 설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보상·지배구조의 이해 일치(Alignment) 문제를 그는 한국 기업의 가장 취약한 고리로 꼽았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경영진 보상과 주주가치가 얼마나 연동되는지 집요하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성과 부진에도 보상이 유지되는 구조는 더 이상 용납되지 않습니다.” 경영진의 인센티브가 가치 창출과 연결되어 있는지, 보상 공시가 충분히 투명한지, 그리고 성과와 보상의 상관관계가 실제로 존재하는지가 향후 한국 기업 평가의 결정적 기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 기준에 미달하는 기업은 2026년 행동주의의 1순위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단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