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판례의 왜곡과 주주 평등 원칙의 후퇴
“대법원 판례, 과세 정책 정당화 위해 논리 왜곡”
“자사주는 자본인데 처분할 땐 자산으로 둔갑…국제 투자자 신뢰 흔들려”
“신주·구주 구별 없는 주주 우선권 보장 필요”
“법원, 경제적 실질 무시한 기계적 논리에서 벗어나야”
자사주를 기반으로 대규모 교환사채를 발행하겠다는 태광산업에 대해 트러스톤자산운용이 가처분 신청을 통해 제동을 걸었다. 법원은 태광산업의 결정이 경영상 목적에 부합하므로 상법의 ‘이사의 충실 의무’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봤다. 이 같은 판결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22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서울 여의도에서 ‘자기주식 교환사채의 법적 쟁점 – 태광산업 케이스 중심으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김규식 변호사는 이날 세미나에서 한국 자사주 판례의 구조적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법원의 법리와 과세당국의 정책이 기업 지배구조를 왜곡시켜 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대법원이 자사주를 자산으로 규정한 판례는 본질적으로 국세청 과세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결과 자사주의 법적 성격이 뒤죽박죽이 됐다”고 꼬집었다.

국세청 과세 정책이 낳은 판례의 왜곡
김 변호사는 1992년 대법원 판례를 문제의 출발점으로 지목했다. 당시 법원은 자기주식 처분 이익을 과세 대상으로 인정하기 위해 자사주를 ‘자산’으로 본 바 있다. 그는 “원래 법인세법은 자본거래를 과세 대상에서 제외했는데, 국세청이 과세를 강행하기 위해 법원과 시행령 해석을 동원한 것”이라며 “결국 판례가 과세 정책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1998년 시행령 개정으로 협의의 자사주 거래에도 과세가 확대되자, 대법원이 이에 맞춰 다시 판례를 바꿨다는 점을 들어 “법원 해석이 일관된 법리보다 정부 정책의 추종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자본으로 공시하면서 자산으로 처분
김 변호사는 회계 공시와 법원의 판례 사이의 모순을 지적했다. 그는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을 하면 회계 공시에서는 ‘자본 조정’ 항목에 마이너스로 반영한다. 이는 국제회계기준(IFRS)에서도 자사주를 자본으로 본다는 뜻”이라며 “그런데 처분할 때는 자산으로 취급해 양도처럼 다루는 것은 외국인 투자자 눈에는 코미디로 보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 같은 이중적 태도가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해치고, 해외 투자자들로 하여금 “한국 법제는 자의적”이라는 인식을 강화한다고 강조했다.
자사주 남용과 경영권 방어 논리
김 변호사는 “우리나라에서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마땅치 않다 보니 자사주를 방패막이로 삼는 경향이 있다”며 “법원이 이를 묵인해 준 결과, 경영진이 지배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자사주를 남용하는 왜곡된 구조가 고착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경영권은 이사회의 권한이 아니라 주주의 통제권에 속한다. 미국의 경우 적대적 인수 방어는 전체 주주의 권익 보호를 위한 것이지, 이사회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 아니다”라며 “이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지배주주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주주 평등 원칙과 신주인수권 논리
김 변호사는 주주 평등 원칙이 자사주 처분 과정에서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사주를 취득할 때는 모든 주주에게 매각 기회를 제공하는데, 처분할 때는 특정 제3자에게 넘기는 것을 허용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라며 “이는 주주의 지분율을 이사회가 임의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고 경고했다.
또한 그는 신주인수권 제도를 언급하며 “상법에 ‘신주 인수권’만 규정돼 있다는 이유로 구주(자사주)에는 적용하지 않는 해석은 도식적”이라며 “영미권의 프리엠티브 라이트(preemptive right)는 신주·구주를 구분하지 않고 지분 희석 방지를 위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법원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
김 변호사는 “자사주를 단순 자산으로 간주하는 판례는 더 이상 유지돼서는 안 된다”며 “경제적 실질과 주주 평등 원칙을 반영한 새로운 법리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계·실무·투자자 모두 압도적으로 자사주를 미발행 주식으로 보는데 왜 법원만 역행하는지 의문”이라며 “법원이 조속히 판례를 정리해 자본시장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