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준 액트 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 법사위 공청회서 “344개 중 13개만 배제 안 해…작년 실제 시행은 KT&G 1곳”
“낮은 채택률 자체가 제도 효용 방증…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는 ‘보완입법’ 병행해 부작용 줄여야”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상법 개정안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참석한 윤태준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ACT) 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은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 권리 보호를 위해 상법에 도입됐지만, 정관으로 배제할 수 있게 해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며 제도 정상화를 촉구했다.
윤 소장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시대상 기업집단 소속 344개 상장사를 조사한 결과, 집중투표제를 정관으로 배제하지 않은 기업은 13개사에 불과했다”며 “여기서 ‘집중투표제로 이사를 뽑았다’가 아니라 ‘집중투표를 할 수 있게 배제를 안 해놓은 기업’이 13개밖에 안 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작년 3월 정기주총 시즌에 실제로 집중투표제를 실시해 이사를 선임한 기업은 KT&G 단 1개사”라고 덧붙였다.
그는 민간 연구 결과도 제시했다. “PWC가 5000억 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기업 비중은 3%도 되지 않았다”며 “기업지배구조 핵심지표 가운데 압도적으로 낮은 준수율”이라고 했다. 이어 “현금배당 예측 가능성 제고, 주총 4주 전 소집 권고 같은 지표는 4분의 1~3분의 1 기업이 지키는데, 집중투표제는 배제하지 않은 기업이 3%밖에 안 된다”며 “이만큼 낮은 채택률은 오히려 집중투표제가 소액주주 권익을 잘 보호하는 제도임을 방증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윤 소장은 집중투표제의 ‘역사적 정당성’도 부각했다. 그는 “집중투표제 역사는 17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며 1854년 영국에서 개념이 제안되고, 1860년 뉴욕 헌법학회에서 위임장 확보가 어려운 주주를 위한 구제수단으로 논의됐으며, 1861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최초로 도입됐다는 연구를 언급했다. “갑자기 어디에서 굴러 나온 제도가 아니라, 두 세기 전부터 논의돼 온 소액주주 보호장치”라는 설명이다.
효과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서는 “경제학계·재무학계에서는 오래전에 논쟁이 정리된 주제”라는 입장을 내놨다. 윤 소장은 “집중투표제를 폐지한 기업 가치가 이후 수일 동안 하락하는 경향을 관찰한 연구, 도입을 요구하는 주주제안만으로도 주가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는 연구, 도입 기업에서 터널링이 감소했다는 연구, 폐지 기업이 CEO 보수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연구 등이 있다”며 “관련 연구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했다.
그는 제도의 작동 원리를 정치 제도에 빗대 설명했다. “지분 분포와 유사한 수로 이사가 선임되도록 하는 장치”라며 “대선거구제·중선거구제·소선거구제 논쟁과 비슷한 면모가 있다”고 말했다. 한 번에 선임하는 이사 수가 많을수록 소수 의견을 대변할 이사가 들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반대로 한 명만 선임하는 구조에서는 사실상 ‘소선거구제’처럼 작동해 제도 효용이 떨어진다는 취지다.
윤 소장은 특히 기업들이 제도를 ‘우회’할 여지를 지적했다. 그는 “해외에서 흔한 우회 방법으로 ‘스태거드 보드’처럼 주총에서 뽑는 이사 수를 계속 1명으로 만들면 집중투표제가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며 “꼼수 부리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도 도입만으로 끝낼 게 아니라, 실제 사용 가능성을 낮추는 편법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를 둘러싼 ‘부작용’ 논쟁에 대해선 보완책을 병행하는 접근을 제안했다. 윤 소장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수가 늘어나면 회사에 적대적인 사람이 많이 들어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있는데, 예컨대 주주제안 시점에서 감사위원 후보를 추천한 측의 특수관계인을 보고하게 하고, 2·3대 주주도 특수관계인을 사전에 보고하게 한 뒤 합산 의결권 제한을 적용하는 방식 등을 고민할 수 있다”며 “감사 기능을 회복하는 차원에서 분리선출 확대는 들어가야 하되, 부작용을 줄일 보완입법을 함께 설계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윤 소장은 한국 시장의 현실을 근거로 “더 과감한 처방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내놨다. 그는 “이사회가 올린 이사 선임 안건 통과율이 99.3%가 넘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며 “이사회가 미는 이사가 선임되지 않는 사례 자체를 찾기 힘든 현실을 깨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과감한 제도 도입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법 개정 논의의 초점을 “주주와의 소통, 그리고 잘못된 의사결정에 대한 견제 장치 회복”으로 잡았다. 윤 소장은 “많은 주주들이 회사와 소통이 전혀 안 되고, 부당한 의사결정에 항고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며 “주주의 강력한 의지를 표현할 가장 좋은 방법은 임원 선임을 통한 압박이고,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주주의 절박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직접적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