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를 ‘무조건 소각’하면, 자사주 매입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권재열 경희대 교수, 상법 개정 공청회서 ‘자기주식 의무 소각’에 신중론…“자산설·미발행주식설 논쟁 정리 없이 규범만 바꾸면 혼선”

발언하는 권재열 교수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상법 개정안 공청회에서 권재열 경희대 교수는 ‘자기주식(자사주) 원칙적 소각 의무’ 입법 흐름에 대해 “일회성 의미는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사주 제도의 기능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특히 권 교수는 자사주의 법적 성격(자산설 vs 미발행주식설)과 취득 경로(자발적 매입 vs 비자발적 취득)가 다른데도 이를 충분히 정리하지 않은 채 소각·처분 규범을 획일화하면 “규범의 확실성과 일관성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자사주는 취득 경로가 다르다…배당가능이익 매입 vs 비자발적 취득”

권 교수는 먼저 현행 상법상 자기주식 취득 경로가 크게 두 가지라고 정리했다.
첫째는 배당가능이익 범위 내에서 회사가 자발적으로 취득하는 경우였다. 둘째는 합병 등 과정에서 비자발적으로 취득하는 경우였다. 예컨대 합병에 반대한 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회사가 그 주식을 사들이면서 자기주식이 발생했다. 권 교수는 “취득 과정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이후 소각 의무나 처분 규율을 설계할 때도 그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사주 ‘성격’ 논쟁…“상법 목적과 회계기준 목적이 꼭 같아야 하나”

권 교수의 문제의식은 ‘자사주를 무엇으로 볼 것인가’에 맞닿아 있었다. 그는 자사주의 본질을 둘러싸고 ① 자산설, ② 미발행주식설, ③ 독특한 성격으로 보는 제3견해가 존재한다고 소개했다. 판례는 대체로 자산설에 가까운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개정안 흐름은 “자산설보다는 미발행주식설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회계처리 기준이 미발행주식설에 가까운 형태를 취하더라도, 상법이 추구하는 규범 목적과 회계기준의 목적이 반드시 동일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회계 논리만으로 상법 규범을 밀어붙이면 상법 체계 내 정합성과 정책적 선택의 여지가 축소될 수 있다고 봤다.

합병 대가로 자사주 교부…“주총 승인 여부에 따라 자산↔미발행 오락가락?”

권 교수는 자사주를 ‘자산’처럼 활용하는 대표 사례로 합병 대가 지급(합병 교부금)을 들었다. 합병으로 새로 유입되는 주주에게 신주를 발행하면 주식 수가 늘고 주주 관리 부담이 커질 수 있었는데, 이를 줄이기 위해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를 합병 대가로 교부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권 교수는 자사주를 합병 대가로 지급하는 경우도 현행상 주주총회 승인을 받으면 처분할 수 있게 돼 있다면서, 주총 승인 여부에 따라 자사주 성격이 ‘미발행’이 되기도 하고 ‘자산’이 되기도 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구조가 과연 규범의 획일성과 확실한 기반을 제공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법리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처분 절차’만 신주 발행처럼 맞추면 오히려 해석 혼선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06년에도 ‘자사주 처분에 신주발행 절차 준용’ 시도했다…왜 무산됐나”

권 교수는 과거 입법사도 꺼냈다. 2006년 상법 개정 논의 과정에서 자사주 처분에 신주 발행 절차를 준용하는 규정을 두려 했지만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유는 자사주 처분이 자본시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는데, 이를 너무 획일적으로 묶어버린다는 반발이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와 지금의 형편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바뀌었다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지금은 다르다”는 선언만으로는 과거에 막혔던 ‘경직성’ 논쟁을 뛰어넘기 어렵다고 봤다.


권재열 교수가 본 ‘의무 소각’의 명암

“일회성 의미는 있어도…결국 ‘자사주 매입 기피’로 갈 수 있다”

권 교수는 자사주 의무 소각이 단기적으로는 “자사주 취득=곧 소각”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강화해 일회성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그 다음을 더 우려했다. 의무 소각이 정착하면 기업들은 “자사주를 취득해도 결국 없애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아예 자사주를 다시는 취득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고 봤다. 이렇게 되면 자사주가 원래 가진 여러 기능(주가 안정, 보상, M&A 등)을 수행하기 어려워지고, 결과적으로 제도가 사실상 사문화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남아 있는 ‘경영권 방어 수단’을 묶어버리면…다른 퇴로가 필요하다”

권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자사주가 국내에서 사실상 “거의 남아 있는 유일한 경영권 방어 수단”처럼 활용돼 온 현실을 언급했다. 이를 단숨에 묶어버리면, 공격자 입장에서는 공격이 쉬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방어 수단을 남겨야 한다’는 당위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방어 수단을 제약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제도적 퇴로(대체 수단)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이 대목에서 권 교수는 과거 사례를 비유로 들며, ‘공격자’의 의도가 반드시 기업가치 제고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1990년대 말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래한글을 사서 키우려는 게 아니라 개발을 막겠다는 취지의 얘기가 있었다”는 취지로 언급하며, 특정 공격이 산업·기술 생태계에 미칠 잠재적 부작용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요지는 “방어 수단을 일괄 봉쇄하면 공격이 더 용이해질 수 있다”는 리스크 관리 관점의 경고였다.

“주주총회 승인(매년)은 ‘소각 여부 판단’이 아니라 ‘이사회 신임투표’가 될 수 있다”

권 교수는 의무 소각과 함께 거론되는 ‘주주 승인’ 구조도 비판적으로 봤다. 이미 상법 개정으로 주주 중심주의가 강화되는 흐름 속에서, 자사주 처분에 대해 매년 주주총회 승인을 받게 되면 주주 입장에서는 유통주식수가 줄어드는 소각을 선호할 유인이 커진다고 봤다.

그 결과 주주총회 승인이 ‘진정한 소각 판단’이 아니라, 이사회에 대한 신임투표처럼 작동할 수 있다고 봤다. 이사회는 장기 전략보다 단기 주주 이익에 더 민감해질 수 있고, 기업 운영이 단기 성과 중심으로 쏠릴 위험이 커진다고 우려했다. 권 교수는 이 점에서 “주주가 이사들보다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언급하며, 의사결정 구조가 바뀔 때 발생할 정보 비대칭 문제도 짚었다.

“가장 큰 문제는 ‘자본금 감소’…인허가 기준 못 맞추면 중소기업에 타격”

권 교수가 공청회에서 특히 강조한 리스크는 자본금 감소였다. 자사주 소각은 경우에 따라 자본금 감소(감자)로 이어질 수 있었고, 이는 기업의 재무 지표뿐 아니라 인허가 기준(최소 자본금 요건)과도 충돌할 수 있었다. 권 교수는 자본금 요건이 걸려 있는 업종·기업의 경우, 소각 의무가 현실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비자발적으로 취득한 자기주식까지 일괄 소각하도록 설계되면, 기업 신용도·조달 여건(금리 등)에 부정적 파급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1년보다 길게”…권재열 교수의 ‘조정 제안’

권 교수는 ‘반대’에 그치지 않고 제도 조정 방향도 제시했다. 그는 주주총회 승인 주기를 1년보다 늘릴 필요가 있다고 봤다. 매년 승인 구조는 기업의 유연성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승인 주기를 더 길게 설계해 이사회가 환경 변화에 대응할 공간을 남겨야 한다고 했다. 또한 사내근로복지기금·우리사주제도는 취지가 유사하다고 봤다 사내복지기금 출연과 우리사주 제도가 지향하는 목적이 유사하므로, 이를 회계 논리로 갈라놓기보다 제도 취지에 맞춰 정합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사주 규율, ‘선언’보다 ‘체계’가 먼저였다”

권재열 교수의 메시지는 한 문장으로 요약됐다.
“자사주 제도의 문제를 고치려면, 자사주의 법적 성격·취득 경로·시장 활용 현실을 먼저 정리하고, 그 위에 규범을 올려야 했다.”

자사주를 둘러싼 논쟁이 ‘소각 찬반’으로만 흘러가면, 제도 설계의 핵심인 규범의 일관성·기업의 유연성·자본금 리스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고 권 교수는 우려했다. 공청회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대의와 ‘기업 활동의 유연성’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자사주 규율의 정교한 설계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팽팽하게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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