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은 지배구조의 귀결이자 출발점…다음 과제는 자기주식과 회계 규정”

이만우 교수

이만우 고려대 명예교수, IMF 이후 30년 지배구조 개혁의 궤적 진단

여야 합의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단발성 입법이 아니라, 외환위기 이후 30년 가까이 이어져 온 한국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연장선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만우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는 10일 삼정KPMG 주최 강연에서 “이번 상법 개정은 특정 정부의 정책이라기보다, 한국 자본시장이 축적해 온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제도적 응답”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한국 기업지배구조 논의의 출발점을 1997년 외환위기로 돌렸다. 외환위기 직전 추진되던 공기업 민영화와 이후 IMF 구제금융 국면에서의 구조조정은 기업 소유와 지배의 문제를 전면에 드러냈고, 1999년 대우그룹 해체와 부채비율 200% 규제는 지주회사 전환과 순환출자 구조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이 시기를 거치며 지배주주의 통제력과 기업가치 간의 긴장이 본격적으로 표면화됐다”고 설명했다.

2000년대 초반 외국계 펀드의 국내 상장사 진입 역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민영화된 공기업들이 비교적 선진적인 지배구조를 도입하면서 해외 투자자들이 이사회 진출을 시도했고, 이를 계기로 주주행동주의가 본격화됐다. 이 교수는 “2003년을 기점으로 한국에서도 주주권과 이사회 역할을 둘러싼 논의가 제도적 영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지배구조를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 간의 이해를 조정하고 감시·규율하는 메커니즘”으로 정의했다. 기업가치뿐 아니라 주주가치를 함께 극대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독립적인 외부 이사를 통한 감시 기능 강화가 국제적 흐름이 됐고, 한국 역시 외환위기 이후 금융회사와 상장사를 중심으로 이 같은 구조를 단계적으로 도입해 왔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흐름의 결과물이 지난 7월 3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이다. 이 교수는 이번 개정의 핵심으로 이사의 충실의무 범위 확대를 꼽았다. 종전에는 이사가 ‘회사’를 위해 충실의무를 부담했다면, 개정안은 이를 ‘회사 및 주주’로 명확히 확장했다. 특히 ‘총주주의 이익 보호’와 ‘전체 주주의 공평한 대우’라는 문구가 법문에 들어가면서, 주주 간 이해 충돌이 발생하는 사안에서 이사회의 판단 기준이 한층 구체화됐다는 평가다.

전자주주총회의 법제화 역시 의미 있는 변화로 언급됐다. 2027년부터 상장회사의 전자주총이 의무화되면, 소액주주의 참여 장벽이 크게 낮아지고 의결권 행사가 대주주 중심에서 주주 전체로 분산되는 구조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주주 참여도가 높아질수록 이사회와 경영진의 설명 책임도 함께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외이사의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한 점에 대해서는 “개념과 현실의 불일치를 바로잡은 조치”라고 평가했다. 미국식 ‘인디펜던트 디렉터’ 개념과 달리, 한국의 ‘사외이사’라는 표현은 독립성의 의미를 충분히 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독립이사 의무 선임 비율 상향과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에서 독립이사가 사내이사보다 많도록 한 규정은, 이사회 내 힘의 구조를 실질적으로 바꾸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감사위원 선·해임 과정에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한 부분도 지배구조 변화의 핵심으로 꼽혔다. 그는 “감사위원의 독립성은 강화되지만, 동시에 최대주주의 이사회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드는 만큼 균형에 대한 논의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향후 쟁점으로는 자기주식 처리 문제를 지목했다. 아직 상법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여당을 중심으로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교수는 “자기주식 소각은 주주가치 보호라는 명분이 있지만, 동시에 기업이 보유한 유동성 자산을 사전에 제거하는 효과도 있다”며 “재무 안정성과 기업 존속 가능성에 미칠 영향을 정밀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정에서 다뤄지지 않은 상법 제7장의 회계 규정 정비 역시 시급한 과제로 제시됐다. 그는 “상법은 여전히 ‘대차대조표’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국제 회계 기준과 외부감사법은 ‘재무상태표’를 쓰고 있다”며 “기본법과 특별법 간 용어 불일치는 법적 해석과 공시 실무 모두에서 혼란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상법이 국제 기준에 맞춰 회계 용어와 공시 체계를 전면적으로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감사위원인 독립이사 증원과 집중투표제 강화 논의에 대해서는 신중론을 폈다. 그는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 대표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이사 수 확대 요구나 이사회 내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며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비밀 유지가 중요한 경영 환경에서 부작용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개정 상법 환경에서 독립이사의 역할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진단했다. 합병·분할, 자산 매각·취득, 주식 교환 등 이해상충 가능성이 있는 안건에 대해, 지배주주가 아닌 전체 주주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할 책임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문 연구기관의 자문을 적극 활용하고, 이사회 논의 과정과 판단 근거를 회의록에 정밀하게 남기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상법 개정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독립이사들이 제도의 취지를 이해하고 실제 의사결정에서 구현할 때 비로소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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