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뿌리는 신뢰 붕괴…상법 개정은 자본시장에 대한 선언”

한국 자본시장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던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표현은 단순한 저평가의 문제가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된 지배구조에 대한 불신의 결과라는 진단이 나왔다. 김태진 고려대학교 교수는 10일 삼정KPMG 주최 강연에서 상법 개정의 흐름을 짚으며 “낮은 주가순자산비율(PBR) 문제에 더해, 기업 가치를 훼손하면서까지 지배주주의 이익을 우선한 사건들이 반복되며 시장의 신뢰가 구조적으로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신뢰 붕괴가 결국 2025년 상법 개정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상법 개정은 개별 조항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이 투자자에게 보내는 방향 전환의 메시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5년 7월 이뤄진 1차 상법 개정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 국한하지 않고 주주 이익 보호까지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종전에도 이사가 주주 이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법문에 이를 분명히 적시함으로써 해석의 여지를 줄였다는 것이다. 여기에 사외이사의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고, 독립이사 의무 선임 비율을 상향했으며, 감사위원 선·해임 과정에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합산 3%로 제한하는 규정도 함께 강화됐다.

전자주주총회에 대한 법적 근거가 처음으로 마련된 점도 중요한 변화다. 코로나 국면에서 사실상 필요성에 의해 운영돼 왔던 전자주총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왔고, 대규모 상장회사의 경우 현장 주총과 병행 개최가 의무화됐다. 김 교수는 “형식적 참여가 아니라 실제 주주 참여를 확대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8월에 단행된 2차 개정은 이사회 구성의 힘의 균형을 직접 겨냥했다. 대규모 상장회사에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하고, 감사위원 분리선출 인원을 기존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했다. 김 교수는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면 대주주는 여러 후보에게 표를 분산할 수밖에 없고, 소수주주는 특정 후보에게 표를 집중할 수 있다”며 “소수주주가 추천한 인사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이전보다 실질적으로 높아진다”고 말했다. 감사위원 선임 과정에서도 최대주주의 영향력은 구조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현재 입법이 진행 중인 3차 개정의 핵심은 자기주식이다. 김 교수는 “자기주식의 본질을 둘러싼 논란을 정리하는 것이 이번 개정의 출발점”이라며 “개정안은 자기주식을 명확히 미발행주식으로 규정하고, 어떠한 권리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자기주식을 교환·상환 대상으로 한 사채 발행이나 담보 제공, 합병·분할 과정에서의 신주 배정 역시 금지된다. 그는 이를 두고 “자사주를 활용한 우회적 지배력 강화나 편법 거래를 차단하려는 입법적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상법 개정 이후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에 등장하는 ‘총주주의 이익’과 ‘전체 주주의 공평한 대우’라는 표현이다. 김 교수는 “총주주는 개별 주주가 아니라 집합적 의미의 전체 주주를 뜻한다”며 “대부분의 정상적인 경영 상황에서는 회사의 이익과 주주 전체의 이익이 일치한다”고 해석했다. 특히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문구는 정당한 가치 보상의 문제, 그중에서도 M&A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너지를 특정 주주가 아니라 전체 주주에게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는 취지가 담겨 있다고 봤다.

이 같은 변화로 이사와 감사위원의 법적 책임이 과도하게 확대됐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신중한 시각을 보였다. 김 교수는 “배임죄 성립 여부는 여전히 해석이 엇갈리지만, 형사 책임과 별개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은 이미 강화되는 흐름”이라며 “법적 리스크가 줄었다기보다 오히려 더 명확해지고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법원 역시 이사의 주의의무와 감시의무를 보다 엄격하게 바라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향후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에게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충분한 정보에 기초한 의사결정’을 꼽았다. 필요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주주 전체의 이익 관점에서 안건을 한 번 더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계열사 간 거래나 M&A와 같이 이해상충 가능성이 높은 사안에서는 외부 전문가의 조력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사회 실패의 원인은 법이 부족해서라기보다, 회의실에서 반대 의견을 내기 어려운 구조와 분위기에 있다”며 “CEO를 제외한 독립이사들 간의 정기적인 논의 구조를 갖추는 것만으로도 이사회의 실질적 기능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상법 개정을 “소수주주권 강화와 이사회 독립성 제고를 통해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 구조를 다시 쌓아 올리려는 시도”로 평가했다. 제도는 이미 상당 부분 마련됐고, 이제 남은 과제는 이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이사회와 시장 참여자들의 학습과 실행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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