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유경 전 APG 대표, 상법 개정 이후 3년… 관건은 ‘관행’과 ‘컬처’
상법 개정으로 주주 충실 의무의 제도적 틀이 마련됐지만, 한국 자본시장의 성패는 이제 법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박유경 전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 APG 신흥국 담당 대표는 3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주최 세미나에서 “2026년부터 2028년까지 향후 3년은 개정된 법을 어떻게 시장 관행으로 정착시키느냐가 관건”이라며 “지금은 국회의 시간이 아니라 시장 참여자의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최근 기업들이 동원하는 각종 ‘꼼수’ 논란에 대해 “꼼수를 쓰는 데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 법률 자문 비용까지 들어간다”며 “그럴 바에야 정도 경영을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법은 아무리 촘촘히 고쳐도 항상 이를 우회하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한다”며 “결국 법이 아니라 시장의 컬처가 문제”라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자, ‘기여의 피크’ 지났다
그는 시장 참여자를 외국인 투자자, 국내 기관투자가, 개인 주주로 나눠 분석했다. 먼저 외국인 투자자에 대해서는 “지난 10~15년간 한국 시장의 코퍼릿 거버넌스를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이제는 기여의 정점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외국인 기관들은 다수 국가에 투자하는 구조상 개별 시장에 깊이 관여하기 어렵고, 의결권 행사는 ISS나 글래스루이스 같은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권고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박 전 대표는 “이 과정에서 한국 특유의 로컬 뉘앙스가 반영되지 못해, 선의의 주주제안이 보수적 판단으로 무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2단계로 가기 위해 필요한 정교한 거버넌스 개선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 운용사에 기대기 어렵다”
국내 기관투자가에 대해서는 보다 날 선 평가를 내놨다. 박 전 대표는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개정 상법을 계기로 시장 관행과 컬처를 주도할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그룹 계열 운용사는 자체 거버넌스 문제와 이해상충에 얽혀 있고, 재벌 계열 운용사는 그룹 지배구조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상법 개정 과정에서도 실질적으로 움직인 곳은 독립 자산운용사들이었다”며 “금융투자업계 대표 단체 역시 주주 충실 의무 도입 과정에서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상법 개정 이후 ‘다음 단계’를 대형 운용사에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개인 주주, ‘마지막 변수’
박 전 대표가 가장 주목한 주체는 개인 주주였다. 그는 “일반 국민 주주들이 자신의 힘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이들이 주주총회에 실제로 참여하고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돕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전자주주총회, 전자투표 등 제도적 장치는 이미 마련돼 있지만, 교육과 접근성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3월 정기주총을 앞두고 개인 주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안내와 교육이 이뤄진다면, 시장 컬처를 바꾸는 결정적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금융위가 책임져야”
해법으로 박 전 대표는 스튜어드십 코드의 구조적 개편을 제시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금융당국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3기관에 맡겨두며 사실상 직무를 방기했다”며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 시장과 달리, 한국은 규제기관이 직접 책임지지 않는 유일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어 “아무리 상법을 100번 고쳐도 자산운용사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금융위원회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직접 관할하고 책임지는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는 “앞으로 2~3년간 시장 참여자들의 선택에 따라 상법 개정이 역사적 전환점이 될지, 또 하나의 미완으로 남을지가 결정될 것”이라며 “좋은 기업이 시장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는 컬처를 만드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