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지배구조 논의의 ‘환원주의’ 경계
“법 강화보다 집행 시스템 개혁이 먼저”
“영미식 모방 아닌 한국형 지속가능 자본주의 설계 필요”
“주주권 강화와 함께 ‘주주의 책임’도 병행돼야”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가 한국 자본시장의 지배구조 개혁 방향에 대해 “제도 몇 개 고치는 방식의 단순 해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8년간 반복된 코리아 디스카운트 논의를 돌아보며 “이제는 방법론 자체를 점검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2026 한겨레 기업지배구조 국제포럼이 열렸다.
■ “지배구조는 복합 생태계…법만 고치면 해결된다는 착각”
이날 류 대표는 한국 거버넌스 논의가 ‘환원주의(reductionism)’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지배구조는 법·관행·문화·정치·사법 시스템이 얽힌 복합 생태계인데, 우리는 조항 하나 바꾸면 해결된다는 식으로 접근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법을 더 촘촘히 만들수록 기업은 법을 피해 가는 기술을 더 정교하게 발전시킨다”며 “규제 비용은 늘고 신뢰는 회복되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법 강화 못지않게 법 집행 시스템 개혁이 먼저라는 주장이다.
■ “지배구조 개선이 목적이 돼버린 건 아닌가”
그는 지배구조 개선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 점도 비판했다. 영미식 주주자본주의 모델을 얼마나 잘 모방하느냐가 목표처럼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사회이사, 위원회, 스튜어드십 코드, 밸류업 모두 틀린 제도는 아니지만, 왜 우리 기업 성장에 필요한지에 대한 토론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대안으로 그는 한국 맥락에 맞는 ‘지속가능 자본주의 모델’ 재설계를 제안했다. 산업 구조, 역사, 노동·금융·사법 시스템이 다른 만큼 제도 역시 맥락화돼야 한다는 것이다.
■ “신중상주의 시대…기업 전략 자율성도 고려해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환경 변화를 언급하며 그는 “세계화 효율성 시대가 끝나고 안보·산업정책 중심의 신중상주의가 도래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기업지배구조 논의도 단기 재무성과와 주주환원 중심에서 벗어나 ▲전략 산업 보호 ▲공급망 안정 ▲기술 주권 확보 ▲장기 투자 리스크 대응 같은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주주권 강화만 외치고, 주주의 책임은 말하지 않았다”
류 대표는 주주권 보호의 당위성을 인정하면서도 “권리가 커질수록 책임도 커져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 차익 중심의 투기적 행동주의가 기업의 장기 투자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다. 이와 관련해 연기금 같은 장기 투자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들은 경영진 대리인 문제를 감시하고 ESG 이슈를 보완하는 책임 있는 주주여야 한다”고 했다.
■ 코리아 프리미엄의 조건
그는 한국이 ‘프리미엄 시장’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내부자거래·시세조종 등 시장범죄에 대한 엄격한 처벌 ▲지정학적 전환기 속 산업 경쟁력 서사 복원 ▲이사회 대표성·책임성 강화 등을 제시했다. 특히 “AI 등 신산업 서사를 잃은 점이 코리아 프리미엄 형성에 가장 큰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류 대표는 “지배구조는 제도 카피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모델 재설계의 문제”라며 “법 강화와 함께 집행 신뢰, 장기 전략, 책임 있는 주주 문화가 함께 갖춰져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넘어설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