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 기업 지분 ‘야금야금’ 늘리는 미국계 장기 투자자
배당·현금흐름 중시, 경영권 분쟁은 피해가는 전략
공개 압박 대신 자문·협업 택한 ‘조용한 행동주의’
자회사 IPO·구조 재편 등 중장기 이벤트에 베팅
스틱인베 인수로 드러난 미리캐피탈식 투자 공식

미국계 투자사 미리캐피탈(Miri Capital Management)가 1세대 토종 사모펀드 운용사 스틱인베스트먼트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국내 자본시장에서 미리캐피탈의 투자 성향과 전략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코스닥·코스피 중소형주를 중심으로 지분을 점진적으로 늘려온 미리캐피탈은 이번 스틱인베 인수를 통해 단순 재무적 투자자를 넘어 장기적 경영 파트너로서의 존재감을 분명히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미리캐피탈이 투자해온 기업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뚜렷하다. 첫째는 저평가 상태다. 미리캐피탈이 지분을 확대해온 기업들은 대부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배를 크게 밑돌거나, 풍부한 현금 보유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곳들이다. 대표적으로 유수홀딩스는 PBR 0.4배 수준에서 장기간 거래돼 왔고, 가비아와 KINX 역시 안정적인 현금창출력에 비해 주주환원 정책이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인포바인 또한 무차입에 가까운 재무구조와 높은 수익성을 갖췄지만, 시가총액은 실적 대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둘째 공통점은 지배구조의 안정성이다. 미리캐피탈은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큰 기업이나 오너 리스크가 부각된 기업보다는 최대주주 지분율이 30~50% 이상으로 안정적인 회사를 선호해왔다. 유수홀딩스와 가비아, 그리고 스틱인베 모두 외부 세력이 단기간에 경영권을 위협하기 어려운 구조를 갖고 있다. 이는 미리캐피탈이 단기 차익이나 적대적 인수보다는 기존 경영진과의 협업을 전제로 한 장기 투자 전략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셋째는 이른바 ‘조용한 행동주의’다. 미리캐피탈은 자문과 행동주의를 결합한 ‘컨설타비스트’를 표방하며, 지분 5%를 넘긴 이후에도 공개적인 경영진 압박이나 위임장 대결에 나서기보다는 일반투자 목적 공시를 유지해 왔다. 대신 배당 정책, 자본 배분, 중장기 성장 전략 등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며 점진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가비아와 KINX 사례에서도 이사회 진입보다는 주주가치 제고 방안 논의에 무게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넷째는 중장기 이벤트 옵션이다. 미리캐피탈의 투자는 배당 수익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수홀딩스의 경우 자회사 싸이버로지텍의 기업공개(IPO) 가능성이, 가비아와 KINX는 자회사 가치 재평가와 사업 구조 고도화가 잠재적 촉매로 거론돼 왔다. 스틱인베 역시 글로벌 출자자(LP) 확대와 운용자산(AUM) 성장, 상장 운용사로서의 기업가치 재평가 가능성이 투자 논리의 핵심으로 꼽힌다.
이번 스틱인베 인수는 이러한 미리캐피탈의 투자 공식이 집약된 사례로 평가된다. 창업주인 도용환 회장이 경영권을 넘기면서도 기존 운용 체계와 투자심의위원회(IC), 핵심 인력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한 점은 미리캐피탈이 경영 간섭을 최소화하는 대주주 전략을 일관되게 유지해왔음을 보여준다. IB 업계 관계자는 “미리캐피탈은 단기적으로 기업을 흔들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춘 투자자”라며 “국내 시장에서는 드문 유형의 장기 주주”라고 평가했다.
결국 미리캐피탈의 행보는 국내 자본시장에 하나의 시그널을 던진다. 공격적 행동주의와 적대적 인수만이 주주가치 제고의 해법이 아니라, 저평가 기업에 대한 장기 신뢰와 점진적 변화 유도 역시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틱인베 인수를 계기로 미리캐피탈식 온건한 행동주의가 한국 자본시장에서 어떤 성과를 낼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