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주제안 제도의 문턱을 대폭 낮추지 않으면 국내 자본시장에서 기관투자자의 건전한 문제 제기 기능이 구조적으로 제약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지열 쿼드자산운용 이사는 국회에서 열린 주주관여 및 주주제안 활성화 논의 자리에서 “주주제안의 본질은 표 대결이 아니라 토론의 장을 여는 데 있다”며 현행 지분 요건 완화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주최로 주주관여활동 및 주주제안 활성환 방안 간담회가 열렸다.
김 이사는 상법상 소수주주권 구조의 불균형을 먼저 짚었다. 회계장부 열람 등 민감한 권한은 3% 요건 등 상대적으로 완화돼 있는 반면, 주주제안은 대규모 상장사의 경우 0.5%를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하는 등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독립계 운용사가 3~6% 이상 지분을 모으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며 “현재 제도는 대기업일수록 주주제안이 사실상 막혀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실제 주주제안이 시가총액 1조원 미만 기업에 집중되는 현상도 근거로 제시됐다. 국내 대형 상장사에도 개선이 필요한 사안이 많지만, 자본 제약 때문에 시도조차 어렵다는 설명이다.
김 이사는 주주제안의 기능을 ‘결정’이 아니라 ‘공론화’로 규정했다. “주요 의사결정은 결국 주총 다수결 원칙으로 가지만, 주주제안은 문제를 드러내고 다양한 주주의 목소리를 듣는 절차”라는 것이다. 이런 성격을 감안하면 지분 요건을 대폭 낮출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는 6개월 이상 장기 보유를 전제로 일반 상장사는 0.1%, 대규모 상장사는 0.05% 수준까지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미국의 경우 금액 기준 중심으로 주주제안이 가능하고, 일본도 지분율 외에 절대 주식 수 요건을 두어 개인 주주까지 참여가 활발하다는 해외 사례도 들었다.
의결권 행사 환경 개선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김 이사는 “기관투자자가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면 주주제안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며 현재는 시간 부족과 업무 과중으로 대형 운용사들조차 의결권 행사를 충분히 하지 못하는 현실을 언급했다. 과거 한 기업 감사 선임 주주제안 사례를 들며 “해외 기관은 판단 시간이 부족했고, 국내 대형 운용사 중 일부는 아예 표를 행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는 의도라기보다 “물리적으로 너무 바쁜 환경”의 문제라는 설명이다.
그 배경으로 주총 일정 집중을 지목했다. 그는 “상장사 주총의 3분의 2가 3일에 몰리고, 2주 안에 99%가 열린다”며 “이 구조에서는 운용사들이 ‘영혼을 실은’ 의사결정을 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주총 소집 통지 2주 전 공시 구조도 해외 사례에 비해 지나치게 짧다고 평가하며, 최소 3~4주 수준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주총 시간대도 대부분 오전 9~10시에 집중돼 있어 물리적 참석과 모니터링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만의 주총 분산 시스템처럼 일정 조정 메커니즘을 제도화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상장사 간 일정 조정이 쉽지 않더라도, 다양한 주주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취지다.
의결권 행사 내역 공시 방식에 대해서도 개선을 제안했다. 현행 법체계는 펀드별 기준이지만, 실제 의사결정은 운용사 단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운용사 단위 공시가 투자자에게 더 유의미하다는 주장이다. 리테일 투자자나 기관 위탁기관이 해당 운용사가 스튜어드십 활동을 얼마나 충실히 하는지 평가할 수 있도록 정보 제공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이사는 상법 개정 논의와 스튜어드십 코드 이행 점검도 언급했다. “도입만 하고 실질 활동이 부족한 운용사도 적지 않다”며, 적극적으로 이행하는 운용사에는 인센티브를, 그렇지 않은 곳에는 불이익이 따르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주제안 제도 완화와 주총 환경 개선, 의결권 행사 활성화는 따로 떨어진 이슈가 아니라 하나의 생태계 문제”라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넓히는 것이 결국 자본이 생산적인 기업으로 흘러가게 하는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