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주최 긴급 좌담회가 열렸다. [사진=안수호]
코스피 지수가 장중 5000선을 돌파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장의 체감은 엇갈린다. 천준범 변호사는 “지속 가능한 코스피 5000이 되려면 숫자보다 구조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며 현 자본시장의 근본적 한계를 짚었다.
23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주최 긴급 좌담회가 열렸다.
이날 천 변호사는 현재의 지수 상승이 “거버넌스 개선과 시장 신뢰 회복의 결과라기보다는 특정 환경과 바람을 탄 측면이 크다”고 평가했다. 대기업 일부는 주주충실의무와 거버넌스 개선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다수의 기업은 여전히 그 문화에 편입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전교생 800명 중 10여 명만 올림픽 금메달을 딴 상황”에 비유하며, “지수는 올랐지만 시장 평균은 아직 제자리에 있다”고 말했다.
“주주충실의무는 살아 있지만, 세부 규정은 비어 있다”
천 변호사는 지난해 도입된 주주충실의무가 아직 ‘작동하는 규범’으로 자리 잡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원칙은 법에 들어왔지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 절차와 해석 기준이 미비한 틈을 타 주주 이익 침해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문제로 그는 포괄적 주식교환 제도를 언급했다. 현행 구조에서는 대주주가 95% 이상 지분을 확보해야 가능한 강제 매수(스퀴즈아웃)와 달리,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에서는 33.3% 수준의 지분으로도 사실상 소수주주를 현금으로 내보낼 수 있다. 천 변호사는 이를 “법의 흠”이라고 표현하며, “주주충실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소수주주 강제 퇴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주주충실의무가 선언됐음에도 법원은 여전히 형식적 규정에 치우쳐 판단하고 있다”며, 제도의 취지보다 문언 해석에 매달리는 사법 관행의 한계도 짚었다.

“법원 전문성 부족…회사법 전담 재판부 필요”
천 변호사는 회사법 사건에서 드러나는 사법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도 언급했다. 그는 “판사들이 취지와 문제의식은 이해하지만, 회사법과 자본시장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과감한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가처분이나 긴급 사건에서도 소극적 결정이 반복되고, 결국 주주 보호가 공허해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미국 델라웨어 법원을 예로 들며, “회사법을 전문으로 다루는 재판부가 있어야 판사 스스로 기준을 만들고, 시장에 신호를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견·중소기업, 제도 도입 이후 오히려 회피 전략”
천 변호사는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간 거버넌스 대응의 온도 차도 문제로 꼽았다. 대기업은 사회적 압박과 감시 속에서 변화하려는 반면, 중소·중견기업 상당수는 “제도의 틈을 이용해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본격화되자, 자사주를 지배주주 개인 회사나 우호 세력으로 넘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는 “이사회가 독립적으로 반대해야 할 사안이지만, 현실에서는 지배주주에 종속돼 아무런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투자자 보호센터 없으면 주주충실의무는 껍데기 될 수도”
천 변호사는 한국 자본시장에서 주주 권리 행사가 지나치게 어렵다는 점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주주대표소송은 비용과 시간 부담이 크고, 승소하더라도 실질적 보상이 제한적인 구조다. 이로 인해 주주충실의무 위반을 실효적으로 다툴 수단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대만의 투자자 보호센터 사례를 언급하며, “이런 공적·준공적 장치가 없다면 주주충실의무는 선언에 그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 직속 기구보다는 연기금과 기관투자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식이 관치 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장은 소유의 포기가 아니라 책임의 시작”
마지막으로 천 변호사는 상장회사의 본질을 다시 짚었다. 그는 “상장은 언제든 더 많은 지분을 가진 사람이 회사를 경영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상장하는 순간 ‘이 회사는 더 이상 내 회사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사주를 통한 우호 지분 확보가 사실상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기능하면서, 경쟁과 인수합병(M&A)을 통한 가치 재평가가 차단돼 있다는 점도 문제로 들었다. 그는 “경쟁 없는 시장에서는 극적인 밸류업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천 변호사는 “코스피 5000이라는 숫자에 취할 것이 아니라, 나머지 다수 기업의 평균을 어떻게 끌어올릴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아직 해야 할 개혁이 훨씬 많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