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외이사 ‘실무 경험’ 요건, 금융지주를 넘어 모든 상장사로 확장해야

고액 연봉에 ‘회장 목줄’까지 쥔 사외이사…이제는 실무 경험을 따질 때다

[이미지=SK]

사외이사는 본래 경영진을 견제하고, 주주를 대신해 기업의 중대한 의사결정을 감시하는 자리다. 그러나 한국 자본시장에서 사외이사는 언제부턴가 ‘꽃 보직’으로 불려왔다. 한 달에 한두 번 이사회에 참석해 찬성표를 던지는 것만으로 수천만~억대 보수를 받고, 때로는 회장 연임과 해임까지 좌우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쥐는 자리. 책임은 제한적인데 권한과 보상은 과도하다는 비판이 반복돼 온 이유다.

최근 금융당국이 금융지주 사외이사 자격 요건에 ‘실무 경험’을 반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 조치다. 교수 위주의 사외이사 선임 관행이 현장 감각 부족, 경영진 견제 실패로 이어진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연구실과 강단에서 쌓은 이론적 전문성이 곧바로 리스크 관리, 사업 판단, 위기 대응 능력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 논의는 금융지주에만 국한돼서는 안 된다. 오히려 모든 상장사로 확장돼야 할 과제다. 과거를 돌아보면 금융권과 대기업 이사회에는 ‘직업이 사외이사’라고 불릴 만큼 장기간 자리를 지키는 인물들이 적지 않았다. 한 회사에서 7~10년 가까이 연임하며 여러 기업 이사직을 겸직하고, 정작 본업은 따로 있는 구조다. 이런 사외이사들은 경영진과 지나치게 가까워지고, 독립성은 형식에 그치기 쉽다.

문제의 핵심은 ‘전문성’의 정의가 왜곡돼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은 특정 학위, 전직 관료·법조인·학자라는 이력만으로 사외이사의 전문성을 설명해 왔다. 그러나 산업과 기술, 규제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논문이나 자문 경험이 아니라 실제 의사결정의 무게를 견뎌본 경험이다. 대규모 투자 판단, 위기 시 구조조정, 규제 리스크 대응, 글로벌 경쟁 속에서의 전략 선택을 직접 해본 사람인지가 중요하다.

실무 경험 요건은 이사회의 질문 수준을 바꾼다. 현장을 아는 사외이사는 경영진 보고를 그대로 받아 적지 않는다. 숫자의 맥락을 묻고, 가정의 현실성을 따지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요구한다. 반면 실무 경험이 없는 사외이사는 경영진의 설명을 ‘이해했다’는 확인 절차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이 차이는 평상시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위기 국면에서는 기업가치와 주주 이익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된다.

물론 실무 경험 요건이 또 다른 형식주의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관련 업계 근무 경력 있음”이라는 한 줄로는 부족하다. ▲담당 분야와 직접 연결된 경력인지 ▲최근성은 유지되는지 ▲경영 책임을 실제로 졌던 경험인지 ▲이해상충 가능성은 없는지까지 함께 검증해야 한다. 아울러 장기 연임 제한, 겸직 제한 강화, 사외이사 선임 과정과 대안 비교의 투명한 공시도 병행돼야 한다.

사외이사는 명예직도, 노후 보장용 자리도 아니다. 고액 연봉과 막강한 권한을 누리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역량을 요구받아야 한다. 금융지주에서 시작된 ‘실무 경험’ 요건화 논의가 모든 상장사 이사회로 확산될 때, 비로소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한다”는 말이 시장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댓글 남기기

HOT POSTING

지구인사이드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