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치 훼손 막으려면 실체법·절차법·재판 전문성 함께 바뀌어야”

김재남 판사(오른쪽) [사진=안수호]

주주가치 훼손과 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별 제도 하나만 고쳐서는 한계가 있다며, 실체법·소송절차·재판 조직과 인적 전문성을 함께 손보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충실의무 도입만으로는 부족…실체법 보완 필요”

김재남 법원행정처 판사는 먼저 실체법 차원의 개선을 첫 번째 과제로 꼽았다. 그는 “이사의 충실의무가 개정된 것은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이것만으로 시장의 행태가 자동으로 바뀌지는 않는다”며 “미국의 완전공정성(intrinsic fairness) 법리나 델라웨어 회사법이 최근 도입한 절차적 안전장치 등은 우리 법제에서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의 해석을 통해 일정 부분 보완할 수는 있겠지만, 입법을 통해 보다 명시적으로 규율한다면 법적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이상훈 교수 등이 지적한 권리구제 조문 보완 역시 충분히 공감되는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대표소송·장부열람 요건, 현실과 괴리”

주주대표소송의 제소 요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김 판사는 “대형 상장사의 경우 대표소송을 제기하려면 수백억 원대 지분을 장기간 보유해야 하는 구조”라며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소송 제기가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회계장부 열람·등사 청구권을 대안적 수단으로 주목했다. “미국 델라웨어 법원은 디스커버리 남용을 제한하는 대신, 주주의 장부 열람·등사 권한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찾고 있다”며 “이를 통해 이사회 감시 의무 소송, 이른바 케어마크(Caremark) 소송에서도 인용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은 장부 열람 요건이 대표소송보다 더 엄격한 경우도 있어, 실질적인 정보 접근이 차단돼 있다는 점을 문제로 들었다. 그는 “열람 대상 역시 회계장부에만 국한돼 있어 전자정보나 제3자가 보관한 회사 관련 자료에 접근하기 어렵다”며 “이 부분은 개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형사·행정 의존 구조, 민사 책임 추궁 막아”

김 판사는 한국에서 주주 피해 구제가 형사수사나 행정조사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형사나 행정기관의 조사 의지와 역량에 따라 민사소송 가능성 자체가 좌우되는 구조”라며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주주들은 민사소송조차 제기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그는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입증책임 전환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개인적으로 동의한다고 밝혔다. “정보 비대칭이 극심한 상황에서 주주에게만 입증 부담을 지우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공정하다”는 설명이다.

“전문 법관·전문 법원 없이는 한계”

김 판사는 마지막으로 조직법적 개선, 즉 누가 재판을 담당하느냐의 문제를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아무리 좋은 법과 절차를 만들어도 이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사람의 전문성이 부족하면 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행 재판 구조에 대해 그는 “기업 관련 분쟁임에도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법관이 담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전문성을 갖춘 법관이 재판을 맡는다면 문서제출명령 등도 보다 적극적으로 운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그는 상사 전문법원 도입을 개인적 의견으로 제시했다. “델라웨어 형평법원, 네덜란드 기업법원 등 해외 사례를 보면 전문 법원이 추상적인 법 규범을 구체적인 시장 행위 기준으로 빠르게 제시한다”며 “1심 단계에서 명확한 기준이 나오면 시장은 대법원 판결을 수년간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김 판사는 “전문 법원의 판결은 곧바로 시장의 행위 규범으로 작동하고, 그 자체로 강력한 예방 효과를 낳는다”며 “주주가치 훼손을 사후적으로 제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전에 억제하는 기능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주주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선언적 규범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실체법, 절차법, 그리고 재판을 담당하는 조직과 인적 구성까지 함께 고민해야 비로소 제도가 실제로 작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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