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남근·오기형·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우찬)와 함께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민사책임 추궁 활성화 모색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이 교수는 “오늘 논의의 핵심은 한국의 민사소송 시장, 특히 주주대표소송과 집단소송 시장이 극단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경제학적으로 보면 이는 명백한 과소공급 상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20년 넘게 이 문제를 다뤄온 발제자들이 사실상 뼈를 갈아 넣은 시장이 이 정도라면, 현재 한국 민사소송 시장은 바닥권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그는 민사소송 시장을 단순히 ‘주주–회사–법원’의 삼각 구도로 보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특히 한국에서는 법원 외에 정부 또는 공적 기관이 중요한 플레이어로 참여해야 한다”며 “해외 사례를 보면 민사소송 시장에서도 국가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그는 대만의 ‘증권선물 투자자 보호센터’를 들었다. 이 교수는 “대만 역시 1990년대 후반 금융위기 당시 주주 피해가 심각했지만, 이를 구제할 민사소송 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며 “시장에 맡겨두면 해결이 안 된다고 판단해 정부가 직접 주주대표소송과 집단소송을 수행할 수 있는 공적 기구를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이 보호센터는 증거 확보 권한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다수 상장사의 주식을 상시 보유해 주주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 교수는 “민간 시장에만 맡겼을 때 발생하는 공백을 공적 권한으로 메우는 전형적인 ‘시장 조성자(Market Maker)’ 역할”이라며 “실제 성과도 상당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증권 관련 유관기관 출연으로 약 4천억 원 규모의 재원을 확보해 정치권이나 재계의 외압으로부터 비교적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이 교수는 최근 정치권에서 자주 언급되는 ‘시장에 맡길 시간’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제시했다. 그는 “민사소송 시장은 지금 ‘시장의 시간’을 기다릴 단계가 아니라, ‘시장을 만드는 시간’”이라며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나 완전공정성(Intrinsic Fairness) 기준 도입과 관련해서는 신중론도 함께 제시했다. 그는 “이런 제도들은 민간 플레이어가 잘 작동하도록 인프라를 깔아주는 것이지만, 이를 도입한다고 해서 한국 민사소송 시장이 곧바로 미국처럼 도약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며 “법문화와 시장 환경을 고려할 때 한국은 미국식 모델보다는 대만·일본 등 아시아권 모델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 제기할 수 있는 ‘소송 남용’이나 ‘정권 개입’ 우려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교수는 “이미 회계기준원, ESG 기준원 등 비영리 재단·사단법인이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선례가 충분하다”며 “이들 기구의 거버넌스와 운영 방식을 벤치마크하면 정치적 악용 가능성은 상당 부분 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주주 보호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선언적 의무 조항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며 “공적 소송 대행 기구를 통해 민사 책임 추궁 시장 자체를 활성화시키는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소송을 줄이는 논리’가 아니라, ‘책임을 제대로 묻는 시장’을 만드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