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대표소송, 제도는 있으나 이길 수 없는 구조…증거개시 없인 공허” [현장+]

발언하는 김주영 변호사 [사진=안수호]
국내에서 가장 오래 주주대표소송을 수행해 온 변호사 중 한 명인 김주영 한누리 변호사는 “한국의 주주대표소송은 제도적으로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승소가 극도로 어려운 구조”라고 진단했다. 그는 2003년 LG그룹을 상대로 한 첫 주주대표소송 제기 이후 20년 넘게 기업 이사들의 위법 행위를 다뤄온 경험을 바탕으로, 현행 사법 시스템이 소액주주에게 구조적으로 불리하다고 지적했다.
김남근·오기형·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우찬)와 함께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주주가치 훼손에 대한 민사책임 추궁 활성화 모색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김 변호사는 주주대표소송의 본질적 난점으로 엄격한 제소 요건과 유지 요건을 꼽았다. 한국에서는 일정 지분을 보유해야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소송 도중 주식교환이나 합병 등으로 회사의 동일성이 변경되면 소송 자체가 각하될 수 있다. 그는 “대형 상장사의 경우 수십억 원대 지분을 장기간 유지해야 하는데, 이것만으로도 소송은 사실상 ‘고위험 투자’가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승소 이후에도 남는다. 주주대표소송에서 이겨도 배상금은 원고가 아닌 회사에 귀속되고, 원고는 소송비용조차 온전히 보전받기 어렵다. 김 변호사는 “태영 사례처럼 수백억 원대 승소 판결을 받아도 변호사 보수와 비용을 다시 소송으로 다퉈야 한다”며 “법원이 인정하는 보수 수준도 극히 박하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전문성과 책임을 감수할 대리인을 찾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입증 책임과 증거 접근성 문제를 가장 치명적인 장애요소로 꼽았다. “주주대표소송은 회사 내부에서 벌어진 의사결정을 외부인인 소액주주가 입증해야 하는 구조”라며 “이사회 자료, 내부 보고서, 이메일 등 핵심 증거는 모두 회사가 쥐고 있는데, 원고가 이를 확보할 실질적 수단이 없다”고 지적했다. 문서제출명령 제도 역시 제재가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평가다.
입증 기준 또한 과도하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우리 대법원은 사실상 80~90%에 달하는 ‘고도의 개연성’을 요구한다”며 “미국 민사소송의 ‘우월한 개연성(51%)’ 기준과 비교하면, 원고에게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법원이 판단을 회피하고 입증책임 뒤에 숨는 ‘소극적 오판’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상선, 아시아나항공, KT&G, 태광 사례 등을 언급하며 “형사 기소나 공정위 처분이 있어도 민사에서는 증거 부족을 이유로 패소하거나 가압류조차 기각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밝혔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되는 판결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해법으로 증거개시(디스커버리) 제도의 도입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디스커버리는 미국식 제도가 아니라, 진실 발견을 위한 보편적 절차”라며 “문서·전자자료 제출 의무 강화, 제재 수단 도입, 증언 녹취 제도 도입만으로도 소송의 90% 이상은 본안 판결 전 합리적으로 종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대한변협 법제연구원장 재임 시 디스커버리 도입을 전제로 한 민사소송법 개선안을 마련한 바 있다.
김 변호사는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의무를 강화해도,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절차가 없다면 법은 선언에 그친다”며 “주주대표소송이 제대로 작동해야 기업지배구조 개혁도 현실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의 제도는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더 불리한 사법 시스템”이라며 근본적 개편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댓글 남기기

HOT POSTING

지구인사이드에서 더 알아보기

지금 구독하여 계속 읽고 전체 아카이브에 액세스하세요.

계속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