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4년부터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해 온 글로벌 투자자 데이비드 리(David K. Lee) 홍콩 레드우드 피크 MD는 최근 상법 개정을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신뢰 회복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사회의 충실의무가 모든 주주를 대상으로 명확히 규정된 점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의 기대는 빠르게 꺾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상법개정에 따른 기업공시 개정 방안’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당 국회의원 오기형, 김남근, 이강일 의원이 공동주최하고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과 경제더하기연구소가 후원했다.
리 MD는 “외국인 투자자 관점에서 이번 상법 개정은 이사회가 대주주가 아닌 모든 주주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구조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진전”이라며 “다만 문제는 법 조문이 아니라, 이사회가 실제로 독립적 판단을 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한국 기업 이사회가 여전히 자문기구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가장 큰 한계로 꼽았다.
그는 한국 이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지배주주의 소액 지분 지배 ▲사내이사 과다 ▲사외이사의 형식적 독립성 ▲일반주주를 위해 이사가 행동한다는 신뢰 부족 등을 지적했다. 이러한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이사 충실의무 강화가 “과도한 규제로만 인식되거나, 반대로 유명무실한 선언에 그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리 MD는 이사회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강조했다. 그는 “합병, 분할, 자사주 매입, 경영진 보상 같은 핵심 사안에서 이사회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투자자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사회 토론의 깊이와 대안 검토 여부가 공시를 통해 드러나지 않는다면 충실의무는 입증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인식 전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현재 한국 주식시장은 여전히 ‘장기투자’보다 ‘단기 투기’의 시장으로 인식된다”며 “이사회가 신뢰를 회복하면 국내 투자자뿐 아니라 해외 투자자도 부동산 대신 주식에 자금을 배분할 유인이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환율 안정과 자본시장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리 MD는 “강한 이사회는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 가치 창출을 돕는다”며 “상법 개정의 궁극적 목표는 규제가 아니라 신뢰 가능한 한국 시장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개정이 제대로 정착된다면 한국 주식시장은 신흥국 프리미엄이 아닌 선진시장 신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