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는 올해 초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해 중복 상장과 이중 상장을 금지하겠다는 원칙을 분명히 밝혔다. 동일한 기업가치가 지배회사와 자회사의 복수 상장 구조 속에서 중복 반영되고, 그로 인해 개인투자자들이 불필요한 위험을 떠안는 관행을 더는 용인하지 않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구다이글로벌, CJ올리브영, LS에식스솔루션스 등 주요 기업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우회적 상장 전략을 구사하며 정부의 정책 기조를 무력화하고 있다.
대표 사례인 구다이글로벌–크레이버코퍼레이션의 일본 플립(본사 이전) 추진은 명목상 일본 시장 확대를 위한 전략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 내에서 불거질 중복 상장 논란을 피하기 위한 구조적 우회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구다이글로벌 컨소시엄은 지난해 크레이버를 인수한 뒤 올해 일본에 ‘크레이버홀딩스 합동회사(LLC)’를 설립하고, 2027년 도쿄증시 상장을 목표로 내부감사 책임자를 모집하는 등 사실상 상장 준비에 돌입했다. 구다이글로벌과 크레이버 모두 상장 계획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동일 그룹 내 두 회사가 국내에서 동시에 상장할 경우 발생할 중복상장 리스크를 해외 상장으로 회피하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이 같은 흐름은 CJ올리브영과 LS에식스솔루션스에서도 반복된다. 두 회사는 모회사나 동일 그룹 내 사업회사와 사업구조가 겹쳐 상장 시 중복 상장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럼에도 정부의 규제 의사와 무관하게 시장에서는 상장 준비가 다시 진행되고 있으며, 정부의 경고가 실효성을 잃었다는 신호마저 감지된다. 기업들이 ‘어차피 허용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플립, 지주사 전환, 해외 상장 등 온갖 우회 경로를 탐색하고 있다는 점은 정책 신뢰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문제의 본질은 자본시장의 신뢰 훼손이다. 기업 하나의 경제적 가치가 상·하위 지배구조 단계에서 반복적으로 가격화되면, 회계적·규제적 리스크가 고스란히 일반 투자자에게 전가된다. 밸류업을 외치며 한국 기업의 할인 요인을 제거하겠다는 정부 메시지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이다. 특히 사모펀드(FI)의 회수 압력이 개입된 딜에서는 상장 구조가 더욱 복잡해지고, 장기적 기업가치보다 단기적 엑시트 일정이 우선되며 시장 왜곡이 심화된다. 구다이글로벌–크레이버 구조는 이러한 문제점의 전형으로 꼽힌다.
결국 금융당국이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제재 원칙을 확고히 해야만 시장의 혼선을 막을 수 있다. 정부가 선언한 ‘중복 상장 금지’가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플립을 이용한 해외 우회 상장에도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고 지배회사–자회사 동시 상장 제한 기준을 명문화해야 한다. 또한 FI 구조를 이용해 상장 요건을 우회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인가·심사 단계에서 단호하게 제동을 걸어야 한다. 자본시장의 신뢰는 규제의 강도보다 규제가 일관되게 지켜질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온다. 지금처럼 기업들이 정부 방침을 정면에서 우회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한국 시장은 다시 과거의 ‘그림자 상장’ 리스크를 떠안게 될 것이다. 금융당국이 내릴 것은 무작정의 철퇴가 아니라 흔들림 없는 기준이며, 그 기준을 어기는 기업에는 주저 없는 철퇴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