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여권 국회의원 다수와 노동시민사회 11개 주요 단체는 18일 오전 10시 이른바 ‘이호진 방지법’ 발의와 관련해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청회를 열고 상법 개정 시대 경제정의에 대한 정치권, 법조계, 학계, 시민사회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았다.
노종화 경제개혁연대 변호사는 이날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 사건을 중심에 놓고, 한국 대기업집단에서 반복되는 사익편취와 터널링, 장기 보석 특혜, 자사주 규제 회피, 낮은 기업범죄 형량 등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했다. 그는 해당 사건이 단일 기업의 일탈이 아니라 “한국 기업지배구조의 후진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라고 규정하면서, 공정거래법·상법·사법제도의 동시 개혁 없이는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무자료 거래·허위 회계·비자금’…전형적인 기업범죄 패턴
노 변호사는 먼저 이호진 전 회장이 2011년 기소된 사건을 짚었다. 허위 회계와 무자료 거래로 515억 원 규모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가운데 206억 원이 최종 인정됐고, 개인 주유소에 회사 직원 급여를 떠넘기거나 계열사 주식을 총수 일가에 헐값 매각해 손해를 끼친 정형적 사익편취 사례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상장사 가치 산정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법원은 검찰 주장 200억 원대 손해를 2억 원대로 축소하면서 특경가법 배임 대신 일반 배임만 인정했다. 노 변호사는 “이 모든 과정이 한국식 기업범죄 처리의 전형”이라며, 7번의 재판과 장기 보석을 거쳐 결국 징역 3년·징역 6월(집행유예 2년)·벌금 6억 원이 확정된 점을 “사법 신뢰를 흔드는 판결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보석 기간 동안 70명 넘는 변호사를 선임한 점, 횡령액보다 더 큰 변호사 비용이 투입된 점을 들어 “과연 무엇이 사법 정의인가”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 ‘김치·와인 강매’와 기업 계열사 골프장 회원권…사익편취 구조의 총체
이어 그는 김치·와인 강매, 계열사 골프장 회원권 대납, 협력업체 강제 입회 등 과거에 드러난 복수의 사건들이 모두 터널링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논란이 된 T2P와 흥국리츠운용 관련 사안도 같은 구조로 해석했다. 두 회사가 그룹 내 자금 흐름의 ‘중간 허브’ 역할을 하며 안정적 수수료 수익을 얻는 구조인데, 총수 자녀가 각 9%씩, 합계 1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20% 사익편취 규제 회피를 위한 전형적 지분 설계”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익을 얻는 사업 기회 자체를 총수 일가에게 넘긴 것 자체가 터널링”이라며 공정위에 적극적 판단을 촉구했다.
■ “황제보석 제도는 개정 시급…사법 신뢰 무너져”
황제보석 제도 문제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이호진 전 회장이 질병 치료를 이유로 7~8년간 보석 상태로 재판을 이어간 점은 이미 국민적 공분을 산 사안이다. 노 변호사는 “법이 없어도 법원과 검찰이 기본적 관리만 했어도 막을 수 있었던 일”이라며, 건강 상태 정기 보고 의무, 피해자 의견 제출 절차 등 과거 국회에서 논의된 개정안들이 더 늦기 전에 반영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냉소가 제도 방치로 반복된다”고 경고했다.

■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교환사채(CB) 발행 급증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와 관련해 최근 기업들이 교환사채 발행을 서두르는 현상도 짚었다. 기존 보유 자사주까지 원칙적 소각 대상으로 포함하려는 여당의 상법 개정 방향이 명확해지자, 많은 기업이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게 넘기기 위해 교환사채를 급히 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환사채 관련 가처분 판결은 주주 인수권을 부인하고, 주주충실의무를 통한 절차적 권리 확대도 인정하지 않았다. 노 변호사는 “이렇게 되면 주주충실의무는 껍데기만 남고, 자사주 규제 개혁의 절반이 무력화될 수 있다”며 법원의 적극적 해석과 보완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특히 기업범죄 양형의 현실을 비판했다. 한국의 횡령·배임 양형 기준상 300억 원 이상이면 5~8년이지만, “대기업 총수가 이 기준대로 처벌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 연방 양형은 동일 범위가 8~10년으로 훨씬 엄격하며, 대규모 기업범죄는 최대 30~40년까지 가능하다. 그는 “지금은 기업범죄가 오히려 ‘남는 장사’라는 잘못된 신호를 준다”며 형사제재의 실효성을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 “과징금의 실질적 대상은 총수·특수관계인이어야”
노 변호사는 공정거래법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했다. 현행 사익편취 규정은 일감을 받은 ‘거래 회사’만 과징금 대상이고, 정작 실질적 수익자인 총수·특수관계인은 과징금 부과 대상이 아니다. 김치·와인 강매 사건에서도 당사자인 총수 일가는 제재를 받지 않았다. 또한 지시·관여 여부를 직접적 증거로만 인정하려는 심사 관행도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최근 “지배구조·보고관행·묵시적 승인 등 실질을 기준으로 관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한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공정위 지침과 과징금 제도도 실질 기준에 맞춰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 변호사는 “지배구조 개선이 단기간 실적을 바꾸지 않지만, 후진적 거버넌스는 영구적 디스카운트 요인”이라며 “코스피 5000을 이야기하려면 무엇보다 기업범죄에 대한 엄정한 처벌과 사익편취·자사주 관련 법제도 정비가 필수”라고 정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