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들러 지분 털자 현정은 측도 한숨 돌려…5% 지분 처분

현정은 회장 측,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4.88% 교환사채로 처분…800억 현금화
사모펀드 H&Q가 투자해 1500억 규모 장외거래
2대 주주 쉰들러, 지분 5% 미만으로 축소하며 사실상 철수
20년 분쟁 종결 수순…경영권 방어 부담 덜어낸 현대그룹
확보 자금, 쉰들러 주주대표소송 배상금 1700억 충당 전망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측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상당 부분을 처분했다. 최근 2대 주주인 쉰들러(Schindler) 측이 지분을 처분하자, 경영권 분쟁에 대한 압박을 덜어낸 모양새다.

29일 공시에 따르면, 현대홀딩스컴퍼니는 현대엘리베이터 4.88% 지분을 교환 사채 방식으로 지난 28일 처분했다. 약 800억원 규모를 현금화한 것이다.

사모펀드 운용사 H&Q가 이 교환사채를 취득해 1589억원에 장외에서 처분했다. 교환사채 방식을 취함으로써 현정은 회장 측은 직접 지분을 처분하는 부담을 덜었다.

H&Q는 현 회장 측 우호 지분으로 등장했다. 꾸준히 지분을 팔던 쉰들러 측이 최근 현대엘리베이터 보유 지분율을 5% 미만으로 줄이면서 경영권 방어에 대한 부담을 덜은 것으로 추정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H&Q는 기존 잔여 투자인 현대네트워크가 발행했던 전환사채(CB), 상환전환우선주(RCPS)에 대한 투자로 현정은 회장의 크레딧을 지원하는 투자자로 남는다”고 말했다.

현 회장 측은 800억원 규모 자금을 마련해 현대엘리베이터에 1700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손해배상금으로 충당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컴퍼니홀딩스는 현 회장이 62%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다. 회사 현금 과반수가 현 회장에게 배당될 수 있다는 의미다.

현 회장의 손해배상 의무 역시 쉰들러의 주주 대표 소송에서 비롯됐다.

국내 승강기 시장 1위 기업인 현대엘리베이터와 스위스 글로벌 엘리베이터 그룹 쉰들러 간의 분쟁은 20년 가까이 이어진 대표적인 외국인 주주와 경영권 방어 세력 간의 갈등 사례로 꼽힌다. 단순한 지분 다툼을 넘어 한국 재벌 지배구조의 취약성과 외국인 투자자의 권리 문제를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다.

두 회사의 관계는 2000년대 초반 현대그룹이 내부 경영권 분쟁을 겪던 시기부터 시작됐다. 당시 KCC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확대하며 그룹 내 지배구조가 흔들리자, 현대 측은 우호 세력으로 쉰들러를 끌어들였다. 쉰들러는 2006년 KCC가 보유한 지분을 인수하며 단숨에 2대 주주로 올라섰고, 이후 2010년대 초반까지 지분율을 35% 가까이 늘리며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 감시자 역할을 자임했다.

그러나 협력 관계는 곧 충돌로 변했다. 2013년 현대엘리베이터가 11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하자 쉰들러는 즉각 반발했다. 신주 발행이 기존 주주의 지분가치를 희석하고, 경영진의 지배권 강화를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현대 측은 해외 공장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외국인 주주는 이를 신뢰하지 않았다. 이후 양측의 갈등은 자본확대, 주주총회 의결권, 지분 희석 문제로 번지며 법적 공방으로 치달았다.

분쟁의 불씨를 키운 결정적 계기는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체결한 파생상품 계약이었다. 회사는 2006년 이후 금융기관들과 총 20여 건의 파생계약을 맺고, 현대상선의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보전해주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고, 쉰들러는 이를 ‘현대그룹 지배권 유지에 회사를 동원한 배임 행위’로 규정했다. 2014년 쉰들러는 현정은 회장 등 경영진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의 판단은 외국인 주주의 손을 들어줬다. 2023년 서울고등법원은 현정은 회장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약 1700억 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한국 기업 역사상 외국인 주주가 경영진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받은 드문 사례로, 국내 기업지배구조 논의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 참여보다는 투자금 회수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2025년 현재 쉰들러의 지분율은 5% 미만으로 줄었고, 추가 지분 매도는 확인되지 않으나 남은 지분도 처분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기화된 소송전과 관계 악화, 법률비용 부담이 누적되면서 사실상 경영권 분쟁에서 손을 떼는 수순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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