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가 기업지배구조헌장을 손질하며 “주주권 침해 이사 선임 불가”라는 항목을 새로 담았다. 주주총회 투명성, 의결권 보장, 주주 제안권 강화 등은 정부의 상법 개정 취지와 맞닿아 있다. 한화 스스로 “주주친화 경영”을 선언한 셈이다.
하지만 시장의 시선은 곱지 않다. 왜냐하면 이번 개정은 그간 한화가 보여온 행보와 뼈아프게 모순되기 때문이다.
말은 ‘주주친화’, 행동은 ‘오너 일가 친화’
최근 한화가 내세운 지배구조 원칙은 주주 가치 존중을 강조한다. 그러나 실제 사례를 들여다보면 주주의 권익보다 오너 일가의 이해가 우선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오너 3남 김동선 부사장의 행보다. 그는 파이브가이즈 한국 론칭을 비롯해 로봇 파스타 ‘파스타엑스’, 로봇 우동 ‘유동’ 등 신사업을 주도했지만 줄줄이 실패로 끝났다. 그러나 책임은 묻지 않았다.
작은 실적 부진에도 자리를 잃는 전문경영인과 달리, 김 부사장은 여전히 한화갤러리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한화로보틱스, 한화비전, ㈜한화 건설부문, 한화세미텍, 한화모멘텀 등 7개 계열사에서 부사장 명함을 유지하고 있다. 이사회가 헌장에 새로 추가한 “기업가치 훼손 책임자가 이사로 선임될 수 없다”는 조항이 실제로 작동한다면, 과연 김 부사장은 지금 위치를 지킬 수 있었을까.
승계 프로젝트와 ‘특권의 경영 수업’
한화의 20년에 걸친 승계 프로젝트는 삼형제를 중심으로 완성 단계에 와 있다. 지주사 ㈜한화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한화에너지는 삼형제가 지분 100%를 가진 사실상 ‘승계의 금고’다. 이 과정에서 일감 몰아주기, 저가 지분 매입, 공정위 조사와 소송 등 숱한 논란이 따라붙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오너 일가의 승리로 귀결됐다.
김동관 부회장은 태양광·방산에서, 김동원 사장은 금융에서 경영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 반면 김동선 부사장은 실패가 누적됐음에도 오너 3세라는 이유로 ‘실험할 권리’를 누려왔다. 주주들의 자본과 계열사 자원을 발판 삼아 이어지는 실패를 용인받는다는 점은 주주친화적 지배구조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진짜 ‘헌장’이 되려면
기업지배구조헌장은 선언적 문구로 그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주주권 침해 이사 선임 불가”라는 원칙이 실제로 적용된다면, 그 대상은 외부 인사만이 아니다. 오너 일가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주주가치 훼손에 책임 있는 이가 끝없이 새 명함을 받아드는 현실은, 한화가 말하는 주주친화 경영이 얼마나 공허한지 보여준다. 헌장의 문구와 실제 행태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지배구조 개선의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