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잇따라 전직 고위 관료를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으로 영입하거나 재선임하면서 ‘전관 예우’ 관행이 여전하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규제 대응과 전문성 강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독립성 훼손과 이해충돌 우려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1위인 삼성화재는 오는 3월 20일 주주총회에서 김재신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할 예정이다. 공정거래 정책을 총괄했던 인물을 영입해 공정위 관련 현안 대응력을 높이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그러나 감독기관 출신 인사를 선임하는 것이 감독기관과의 거리 두기라는 사외이사 취지에 부합하느냐는 논란도 나온다.
물류 계열사인 현대글로비스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회사는 다음 달 주총에서 한승희 전 국세청장을 사외이사(감사위원)로 재선임할 예정이다. 한 전 청장은 국세청 조사국장과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세정 관료 출신으로, 현재는 세무법인 CEO로 활동 중이다. 세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는 강점이 있지만, 과세 당국과의 유착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바이오 업계에서도 전직 규제기관 수장 영입이 이어졌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이의경 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사외이사인 감사위원으로 신규 선임하기로 했다. 회사는 규제 전문성 확보와 시장 신뢰 제고를 이유로 들었지만, 업계에서는 “허가·심사 권한을 가졌던 인물이 곧바로 피감 기업 이사회에 합류하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흐름은 중견·신생 기업으로도 확산되는 모습이다. AI 솔루션 기업 제논은 지난 1월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김학도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회사는 IPO 준비와 사업 확장 과정에서 경영 투명성과 대외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영입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차관은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중기부 차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등을 지낸 산업·중소기업 정책 전문가다.
기업들이 전직 관료를 선호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규제 방향을 잘 알고 있고, 정부·감독기관과의 소통 창구 역할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각 사는 공정위 대응, 세무 리스크 관리, 인허가 전문성 강화, IPO 신뢰도 제고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사외이사의 본래 취지다. 사외이사는 경영진을 견제하고 주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독립적 감시 장치다. 그러나 감독기관 출신 인사가 반복적으로 선임되면 이사회가 ‘방패막’ 역할에 치우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이번 인사들은 금융·세무·바이오·산업 정책 등 규제 민감 업종 전반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비판이 더 거세다. 규제 산업일수록 전관 영입 유인이 크고, 그만큼 이해충돌 논란도 반복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