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 경제민주화의 주역인가, 기업 털기의 주범인가”

영화 ‘프리티 우먼’과는 다른 현실
투자 대상 기업에 부채를 일으키는 사모펀드의 투자 방식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정혜경 진보당 의원 주최로 ‘홈플러스 사태로 본 투기자본 MBK 규제 방안 마련 토론회’가 열렸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인 정승일 박사는 “사모펀드는 다양한 포장지를 두르고 있지만, 결국 자산을 뜯어먹는 ‘스트리핑(stripping)’ 행위를 한다”고 지적했다.
정 박사는 “리처드 기어가 출연한 영화 ‘프리티 우먼’ 속 리처드 기어의 직업이 바로 사모펀드 매니저”라고 말했다. 영화는 본질적으로 ‘나쁜 금융인’이 선한 여성(줄리아 로버츠)을 만나 인간적으로 개과천선하는 이야기다.
정 박사는 “이는 환상일 뿐, 현실의 사모펀드는 기업을 사고팔며 고용 유지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상법 개정으로 사모펀드가 혜택 볼 수도
정 박사는 “80년대 말 레이건 정부 시기, 신자유주의와 뉴라이트 혁명 속에서 사모펀드가 본격적으로 성장했다”며 “이 과정에서 사모펀드 매니저들은 자산을 뜯어먹는 행위로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한국에서는 사모펀드가 ‘경제 민주화의 주역’으로 포장됐다”며 “10년 전만 해도 경제민주화라는 말을 꺼내면, 사모펀드나 공모펀드 같은 소액주주들의 권리 강화를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엔 대주주(재벌)만 문제 삼았지, 사모펀드의 역할은 별로 주목받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사례들은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정 박사는 “지금 보면, 사모펀드가 기업을 장악하고, 오히려 그 기업을 털어먹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면서 “대표적으로 사외이사 집중투표제를 활용해 경영권에 개입하고, 이후 자산을 하나씩 매각하는 방식으로 기업을 ‘스트리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모펀드가 경제민주화의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대주주가 되어 기업의 가치를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 박사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상법 개정 역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정 박사는 “상법 개정은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한다는 취지지만, 실제로는 사모펀드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이를 활용해 경영권을 탈취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20년 전부터 대주주 견제를 명분으로 소액주주 권한 강화가 이야기돼 왔지만, 지금은 소액주주가 아니라 사모펀드가 그 혜택을 보는 상황”이라 “제도가 현실에 맞게 조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박사는 유럽연합(EU) 사례를 들며 한국 규제의 허점을 짚었다. 정 박사는 “EU에서는 사모펀드의 레버리지(차입)까지 엄격하게 규제한다”면서 “너희 돈으로 투자하라고, 남의 돈 빌려서 털어먹지 말라고 막는 것인데 우리는 아직 레버리지에 대한 제대로 된 규제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모펀드가 진정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려는 게 아니라면, 최소한 레버리지 투기라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 박사는 “AIFMD는 헤지펀드, 사모펀드(PE), 부동산펀드 등 공모펀드를 제외한 대체투자펀드의 운용을 규제하는 EU 핵심 지침”이라고 설명했다. 이 규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스템적 리스크 저감과 투자자 및 실물경제 보호를 목적으로 2011년에 처음 도입된 것으로, 사모펀드 운용사에 대한 라이선스 발급, 등록 요건, 그리고 정기적인 정보 보고의무 등 포괄적인 규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정 박사는 “EU 내에서 AIF를 운용하는 모든 운용사는 AIFM으로 등록되어 금융감독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소 운용자산 기준은 레버리지 사용 여부에 따라 1억 유로(레버리지 적용 시) 또는 5억 유로(레버리지 없이 출자자가 5년간 환매권 없는 경우)로 설정되어 있으며, 이 기준을 초과하는 운용사는 전면 규제의 대상이 된다.
또한, 등록된 펀드 운용사는 투자 전략, 펀드매니저 보수 및 보상 정책, 최소 자본금, 재무 전망 등 주요 정보를 정기적으로 금융규제 당국과 주요 출자자에게 업데이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를 통해 투명한 펀드 운영과 투자자 보호를 도모하고 있다.
정 박사는 AIFMD의 중요한 규제 중 하나로, 사모펀드가 타겟 기업의 지배권을 확보할 경우 의무적으로 통지·신고해야 하는 절차를 소개했다. 비상장 기업의 경우 주식 의결권 50% 이상, 상장 기업은 30% 이상의 의결권 확보 시 신고 의무가 발생한다. 통제권 획득 시, 최소 10일 이내에 해당 정부 당국과 타겟 기업 및 주요 주주들에게 통보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기업 자산의 탈취(asset stripping)를 방지하고자 한다.
정 박사는 “AIFMD 제30조는 사모펀드가 인수 후 24개월 이내에 자사주 취득, 감자, 과도한 배당 지급, 또는 타법인에 대한 대출 등으로 피인수 기업의 자산과 자기자본을 유출하는 행위를 강력히 제한한다”며 “이러한 규제가 단기 수익 추구에 따른 기업 재무 악화와 고용·공급망 훼손, 나아가 시스템 리스크로 이어질 위험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정 박사는 AIFM와 피인수 기업 간 이해 상충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보고·신고 의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운용사는 지배권 획득 시 관련 정보와 정책, 특히 직원 및 주주에 대한 소통 전략을 금융규제 당국에 제공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피인수 기업의 미래 비즈니스와 고용, 노동 조건에 미칠 영향을 상세히 보고해야 한다.
정 박사는 “사모펀드가 과도한 레버리지를 사용하여 피투자기업의 현금흐름을 위협하는 사례가 빈번하므로, 이에 대한 정기 보고와 감독 당국의 추가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4년 4월 발효 예정인 AIFMD II 개정안에 따르면, PE 및 헤지펀드의 피투자기업 배당 지급 정책, 자산 매각 행위, 레버리지 기반 이자·배당 지급에 대한 모니터링과 스트레스 테스트 등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정 박사는 “EU의 AIFMD 규제 체계는 단순한 서류상의 규정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펀드 운용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함으로써 투자자 보호와 실물경제 안정을 도모한다”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