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엑스포와 기업인 사면

사우디아라비아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0월 23일(현지시간) 리야드 네옴 전시관을 관람한 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부산을 방문했다.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부산 민심을 달래는 부산시민의 꿈과 도전 격려 간담회 참석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동행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자서전을 펴내면서 88 서울 올림픽 유치에 공헌했던 자신의 노력에 대해 자세히 썼다.

세계 각국에 파견된 현대 계열사 직원들이 동원된 것은 물론이고, 경비 처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회삿돈인지 정 회장 개인 돈인지 모를 돈이 사용되기도 했다.

한국에 제대로 된 민주화가 이뤄지기 전, 말 그대로 ‘서울의 봄’을 열망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이제 정 회장의 손자인 정의선 현대차 회장과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을 방문해 박형준 부산시장, 기업인들과 떡볶이를 시식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기업인은 어디까지나 사인으로서 기업인의 역할을 하고, 국가의 과제는 공무원이 해야 한다. 물론 기업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발적인 봉사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절대 권력 앞에서 ‘자발적’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여러 개 재판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는 피고인 신분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올해 8월 광복절을 맞아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명예회장, 신영자 전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이중근 전 부영그룹 회장,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을 사면했다.

재계를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원 등으로 국익에 기여해 나가겠다”는 논평을 내놨다. 기업인들의 범죄와 엑스포 유치는 같은 선상에서 논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부가 과거에도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명목으로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사면한 사례가 있기에 나온 이야기다.

국가공무원법은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의 임용을 제한하고 있다. 이는 공기업, 공단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일개 말단 공무원도 맡지 못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국정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다. 기업인들은 정해진 공식처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로 인한 제한도 사면으로 인해 곧 풀린다.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돈 있으면 무죄 돈 없으면 유죄)라는 말을 미래 세대에도 남겨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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