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평등원칙’ 천명한 새 판결 … 상법 개정 논의도 연결

“특정 주주에 주요 경영사항에 사전동의권 부여는 무효”

서울고등법원 [사진=정우성 기자]

벤처캐피탈·스타트업 투자실무에 많은 영향을 미칠 판결이 나왔다. 특정 주주에게 회사의 주요경영사항에 대한 사전동의권을 부여하는 약정은 주주 평등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아 무효라는 판단이다.

A사는 2016년 12월 B사가 새로이 발행한 20만주를 2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추후 B사가 신주를 발행할 경우 A사의 사전 서면동의를 받도록 하는 약정을 체결했다. 이를 어길 시 투자금 상환과 함께 위약벌을 부담하도록 했다.

B사가 A사의 동의 없이 26만주의 신주를 발행하자, A사는 상환금과 위약벌 명목으로 합계 46억여원을 달라는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법 민사16부(차문호 이양희 김경애 부장판사)는 A사가 B사를 상대로 낸 투자 상환금 청구 소송에서 A사의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회사가 일부 주주에게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기로 하는 약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라고 봤다.

“(이 같은 약정을) 허용하면 재무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처해 신주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는 회사의 기존 주주들을 불리한 지위에 처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투자회사 우대하는 갑질 조항 막힐까


이 재판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피투자회사에게는 보다 유리하게, 투자자에게는 보다 불리하게 투자 방식이 변경될 전망이다. 그동안에는 투자회사에 유리한 이 같은 약정을 붙이는 것이 관행처럼 이뤄졌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이러한 판결이 전체적인 투자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지 않을지 조금 걱정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경영자가 지배적인 지분율을 확보하는 것이 더 큰 의미를 갖게됐다. 과반이 안 되는 지분율을 가지고 다른 주주들에게 손해가 될 결정을 내리는 것의 정당성이 부여되지 않는 것이다.

이 판결의 영향으로 주주의 위임을 받은 이사회 중심 경영으로 전환이 가속화할수도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이사는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고려해서 경영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 결정으로 피해를 본 다른 주주들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 그로 인해 이사 선임권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 있다.


이사가 ‘총 주주를 위하여’ 충실해야 한다고 규정하면?


법조계 일부에선 상법 개정 논의도 나온다.

우리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로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회사는 전체 주주와 다르다. 따라서 일부 주주에게 손해가 되더라도 회사를 위한 것이라는 논리가 가능하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배정 사건이 대표적이다. 가격을 최소한으로 산정해도 주당 1만 4825원이 예상되었던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7700원에 발행하였으나 기존 주주였던 삼성 계열사들이 일제히 권리를 포기하고 3자 배정 방식으로 이재용이 1996년 12월 7700원에 배당받았다.

2009년 5월 대법원은 “주주배정으로 전환사채를 발행하는 경우에는 제3자 배정에 의한 경우와는 달리 전환가액을 반드시 시가를 고려한 적정한 가액으로 하지 않더라도 이사로서의 임무위배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특정 주주들의 손해를 이사로서 임무 위배로 보지 않은 것이다. 다만 조항이 ‘회사를 위하여’ 대신 ‘총 주주를 위하여’로 바뀌면 어떨까. 이사의 책임은 더욱 강화된다. 상장사 사외이사가 단순히 편하게 월급 받는 자리가 아니라 중차대한 경영상 책임을 질 수 있는 자리로 변화한다는 것이 법조계 관계자들 설명이다.

천준범 법무법인 세움 변호사는 “총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규정해 두면, 사장은 어떤 형태로든 회장을 다른 주주들과 달리 취급하는 거래를 하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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