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충실의무, 이제 ‘회사’가 아니라 ‘주주 전체’로 향한다”

발언하는 조원희 변호사 [사진=안수호]

합병·분할·계열사 거래…주총 질의의 초점이 바뀌었다

절차적 정당성·객관적 근거 없으면 방어 어려워

감사위원 3%룰 전면 확대…소수주주 연대 영향력 급증

“주총 답변은 증거가 된다…예상 Q&A 준비 필수”

개정 상법이 본격 적용되는 올해 정기주주총회는 단순한 의안 처리의 장을 넘어, 이사회 판단의 정당성을 검증받는 무대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특히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 전체로 확장되면서, 합병·분할·배당·계열사 거래 등 주요 경영 판단이 주주총회에서 직접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조원희 법무법인 디엘지 변호사는 9일 디엘지 주최 세미나에서 “충실의무 조문에 ‘주주’라는 단어 하나가 추가됐을 뿐이지만, 회사 의사결정의 방향성은 완전히 달라졌다”며 “주주 간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가 됐다”고 강조했다.


합병·분할, 이제는 ‘비율’보다 ‘설명 책임’

조 변호사는 이사 충실의무의 변화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으로 합병과 분할을 꼽았다. 과거에는 주주총회에서 다수결로 통과되면 정당성이 인정되는 경향이 강했지만, 이제는 소수주주 이익 침해 여부가 독립적인 판단 대상이 된다.

그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례를 언급하며 “합병 비율이 대주주 승계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논란처럼, 앞으로 거의 모든 합병에서 주주가치 희석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LG화학의 물적분할로 출범한 LG에너지솔루션 사례에 대해서도 “사업 성장의 과실이 모회사 주주에게 충분히 귀속되지 않는 구조라면, 이사회가 주주 전체의 이익을 고려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두산밥캣두산로보틱스 합병 역시 “적자 기업과의 합병 비율이 합리적이었는지, 재무적 차이를 어떻게 설명했는지가 향후 기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답변보다 중요한 건, 그 전에 뭘 했느냐”

조 변호사는 주주총회 질의 대응에서 절차적 정당성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주주가 ‘대주주에게만 유리한 결정 아니냐’고 묻는다면, 말로 설득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외부 전문기관의 가치평가, 독립이사만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 충분한 회의 기록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배당 확대 요구에 대해서도 단순히 “장기 성장을 위한 판단”이라는 추상적 설명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유보 자금이 미래 성장에 어떻게 쓰이고, 그 결과 주주가치가 어떻게 제고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근거 자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감사위원 3%룰 전면 확대…지분 쪼개기 무력화

이번 개정으로 감사위원 선임·해임 시 3%룰이 사내·사외 구분 없이 전면 적용되면서, 지배주주의 영향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산해 3%로 제한하기 때문에, 계열사로 지분을 분산하는 기존 전략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조 변호사는 “5~10% 수준의 소수주주 연대만으로도 감사위원 선임이 가능해졌다”며 “집중투표제까지 결합되면 소액주주가 원하는 인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키는 구조가 된다”고 말했다.

특히 전자투표를 도입하지 않은 기업의 경우, 정족수 미달로 감사위원 선임 자체가 무산될 리스크도 커졌다고 지적했다.


“주총 의장, 이제 추상적 답변은 위험하다”

조 변호사는 주주총회 의장의 역할 변화도 강조했다. 그는 “과거처럼 ‘검토하겠다’는 식의 추상적 답변은 이제 충실의무 위반 논란의 단서가 될 수 있다”면서 ▲숫자와 사실에 근거한 답변 ▲법무·법률대리인과 사전 조율된 정제된 발언 ▲회사 현안별 예상 Q&A 사전 준비 ▲주총 발언이 향후 주주대표소송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강조했다.

그는 “주총은 더 이상 10분 만에 끝내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다”라며 “이사회가 어떤 정보와 절차를 거쳐 판단했는지를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차 개정 상법까지…내년 주총은 더 어려워진다

오는 9월 시행되는 2차 개정 상법은 대규모 상장사에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2인 분리선임을 도입한다. 조 변호사는 “올해는 1차 개정의 시험대라면, 내년 주총은 구조적으로 훨씬 복잡해질 것”이라며 선제적 준비를 주문했다.

그는 “이사의 충실의무는 주주총회 하루에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연중 이사회 운영과 주주 소통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며 “이번 주총은 그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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