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별 하우스별 의결권 판단 확산, ‘예스·노’ 대응 전략은 한계
외국인 지분 38% 시대…ISS·글래스루이스 이후를 대비하라
행동주의 상시화…공시는 규제가 아니라 ‘투자 판단 자료’
이사회 역량·보수-성과 정렬, 2026년 주총의 시험대
국내 상장사 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의 무게중심은 더 이상 국내에만 있지 않다.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상장주식 보유 시가총액이 1,400조원, 전체의 38%를 넘어선 상황에서 글로벌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판단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주총 리스크 관리 자체가 불가능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성환 얼라이언스어드바이저스 전무는 9일 법무법인 디엘지 주최 세미나에서 “외국인 기관투자자가 없는 상장사는 사실상 없다”며 “상법 개정 이후 주총 리스크는 법률 문제가 아니라 표로 현실화되는 거버넌스 문제”라고 말했다.
의결권은 누가 결정하나…‘투자자’와 ‘투표자’는 다르다
글로벌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구조는 국내 기업이 흔히 오해하는 지점이다. 박 전무는 “해외 기관에서 실제 투자를 집행한 펀드매니저와 의결권을 행사하는 담당자는 전혀 다른 조직”이라며 “의결권 담당자 한 명이 수백~수천 개 기업의 주총 안건을 다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구조에서 등장한 것이 의결권 자문사다. 전 세계 기관투자자는 오랫동안 ISS와 글래스 루이스(Glass Lewis)의 권고안을 참고해 의결권을 행사해 왔다. “기업이 ISS·글래스루이스의 ‘찬성(For)’을 받는 데만 집중했던 이유”다.
하지만 이 공식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ISS·글래스루이스 이후…‘개별 하우스’ 시대로 이동
박 전무는 “이제는 ISS와 글래스루이스의 단순 권고에만 대응하는 전략은 끝났다”고 단언했다. 2025년 이후 의결권 자문사를 둘러싼 정치·규제 환경 변화로,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은 자체 판단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변화가 ‘패스스루 보팅(Pass-through voting)’이다. 블랙록(BlackRock)은 운용자산의 상당 부분에 대해 최종 투자자(LP)가 의결권 성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를 열어두었고, 뱅가드(Vanguard) 역시 일부 자산에서 유사한 방식을 도입했다. JP모건은 ISS·글래스루이스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판단 체계를 쓰겠다고 공식화했다.
박 전무는 “이제 기업은 ‘ISS가 찬성했는가’가 아니라 각 기관의 하우스별 스튜어드십 코드와 판단 기준을 얼마나 이해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행동주의는 ‘이벤트’가 아니라 ‘상시 변수’
의결권 환경 변화와 맞물려 행동주의의 상시화도 가속되고 있다. 과거 배당 확대·자사주 소각에 집중됐던 주주제안은 이제 이사회 구성, 보수 체계, 투명성, 거버넌스 구조 전반으로 확장됐다.
박 전무는 “행동주의 펀드가 항상 장기 가치 제고만을 목표로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단기 차익 사례도 언급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사후 대응이 아니라 사전 인게이지먼트”라며 “반대 권고가 나온 뒤 해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전에 기업의 논리와 근거를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시는 ‘규제 대응’이 아니라 ‘투자 판단의 언어’
상법 개정으로 의안별 표결 결과 공시, 기업지배구조보고서 의무화, 영문 공시 확대가 이어지면서 공시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박 전무는 “공시는 규제 체크리스트가 아니라 글로벌 투자자의 의사결정 자료”라고 규정했다.
특히 글로벌 기관투자자는 ▲안건 설명의 명확성 ▲이사회 판단 근거 ▲주주가치에 미치는 영향 ▲대안 검토 여부 등을 공시에서 직접 확인한다. “설명력이 부족하면 의결권은 자동으로 위험 구간에 들어간다”는 설명이다.
2026년 주총의 관전 포인트는 ‘이사회’와 ‘보수’
박 전무는 2026년 주총을 앞두고 두 가지를 핵심 리스크로 꼽았다.
첫째는 이사회 평가의 고도화다. 코스피200 기업의 상당수가 보드 스킬 매트릭스를 도입했지만, 실제로 이를 승계 계획과 연계해 운영하는 곳은 제한적이다. “형식적 공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둘째는 임원 보수와 성과의 정렬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총주주수익률(TSR) 대비 보수가 과도하거나 성과 연동성이 약한 경우, 보수 안건 찬성률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다. 특히 중소·중견 상장사에서 이 문제가 두드러진다.
“주총 전략의 출발점은 글로벌 시각”
박 전무는 “주총 대응의 출발점은 ‘우리 회사 안건이 글로벌 기관투자자의 눈에 어떻게 보일 것인가’”라며 “법적 적법성만으로는 부족하고, 설명력·설득력·비교 가능성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상법 개정 이후 주총은 더 이상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글로벌 투자자와의 시험대”라며 “의결권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곧 기업가치 관리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