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상장주식 시장에서 장기간 지속되는 저평가 현상의 근본 원인으로 ‘이사회의 형식적 대응’과 ‘공시 제도의 빈약함’이 지목됐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인수·합병(M&A)은 저평가를 해소하는 가장 강력한 시장 메커니즘인데, 한국에서는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1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상법개정에 따른 기업공시 개정 방안’ 토론회가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당 국회의원 오기형, 김남근, 이강일 의원이 공동주최하고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과 경제더하기연구소가 후원했다.
이 대표는 미국 자본시장을 사례로 들며 차이를 설명했다. 그는 “미국에서는 기업가치가 1조 원 수준인데 주가가 3000억 원에 거래된다면, 누군가는 지분 5% 안팎을 확보해 이사회에 공개적으로 인수 제안을 한다”며 “이사회는 이를 무시할 수 없고, 검토 여부와 판단 근거를 즉시 공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충실의무 위반에 따른 소송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시장은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이 대표는 “과거에는 이사회가 진지한 인수 제안을 받아도 법적 의무 없이 묵살할 수 있었다”며 “그 결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1배 수준인 기업이 장기간 방치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대선 국면에서조차 ‘이 정도 저평가면 M&A 대상이 돼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나왔지만, 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최근 도입된 이사의 충실의무를 전환점으로 평가했다. 이 대표는 “충실의무가 도입된 이상, 이제는 한국 이사회도 미국과 동일한 수준의 책임을 진다고 본다”며 “다만 이 책임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소송을 통한 견제가 가능해야 하고, 무엇보다 공시 제도가 따라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행 ‘조회공시’ 중심의 공시 체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검토 중, 확정된 바 없음, 사실 무근이라는 단답형 공시만으로는 이사회가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진지하게 검토했는지 판단할 수 없다”며 “미국처럼 주요 사항 보고서에 이사 개개인의 판단과 찬반 이유를 기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보나파이드 오퍼, 즉 진지한 인수 제안에 대해 이사들의 판단 과정과 논거를 공시하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상황은 달라진다”며 “충실의무 소송 리스크가 현실화되면, 이사회는 제안을 형식적으로 넘기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제도 개선이 저평가 해소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사회가 인수 제안을 성실히 검토하고 그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게 되면, 과도하게 저평가된 기업은 반복적으로 인수 제안을 받게 되고 시장 가격은 정상화된다”며 “이는 정부 개입이 아니라 시장 원리에 의한 구조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창환 대표는 “M&A는 투기적 수단이 아니라 주주가치를 회복시키는 장치”라며 “충실의무, 소송, 공시가 맞물려 작동할 때 한국 자본시장의 만성적인 저평가 문제도 구조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