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자본시장에서 공개매수를 통한 자발적 상장폐지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기업 계열사의 지배구조 재편부터 사모펀드(PEF)의 인수·매각 전략까지 공개매수는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지만, 소액주주 보호와 공정가액 산정을 둘러싼 논란 역시 갈수록 격화되는 양상이다. 신세계푸드, SK디앤디, 에코마케팅에 이어 최근 코엔텍 사례까지 더해지며 “상장폐지가 대주주와 사모펀드의 수익 극대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힘을 얻고 있다.
신세계푸드는 현재 진행형인 논란의 중심이다. 이마트는 신세계푸드 잔여 유통주식 전량을 주당 4만8120원에 공개매수한 뒤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공개매수가는 직전 거래일 종가 대비 약 20% 할증됐지만, 주당순자산가치(BPS)의 약 60% 수준에 불과하다. 증권가에서는 신세계푸드의 적정 가치를 5만원대 중후반으로 제시하는 보고서도 잇따르고 있다.
특히 상장폐지 직전 단체급식사업부 매각 과정에서는 할인현금흐름법(DCF)을 적용해 사업 가치를 산정해 놓고, 정작 공개매수 가격 산정에서는 이러한 본질가치 평가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 소액주주 반발의 핵심이다. 소액주주들은 “지배주주가 주가 저평가 국면을 활용해 구조조정을 명분으로 헐값 상장폐지를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과거 사례에서도 반복됐다. SK디앤디는 낮은 PBR 수준의 공개매수로 상장폐지를 추진했다가 소액주주 반발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신성통상과 아트라스BX 역시 자진 상폐 과정에서 공개매수가의 적정성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겪었다. 단기적으로는 공개매수 공시 이후 주가가 급등하며 ‘반가운 이벤트’처럼 보일 수 있지만, 중장기 투자자에게는 강제 청산에 가까운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사모펀드가 이 구조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엔텍이다. 사모펀드 E&F프라이빗에쿼티(E&F PE)는 지난해 코엔텍을 주당 9000원에 공개매수해 자진 상장폐지한 뒤, 불과 반년 만에 홍콩계 사모펀드에 주당 1만5000원 수준으로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공개매수 당시 평가한 기업가치는 약 4500억원이었지만, 매각가는 7000억원대 중반으로 뛰었다. 상장폐지 이후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스란히 흡수하며 1800억원 안팎의 추가 수익을 확보한 셈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이 사실상 축출됐다는 점이다. E&F PE는 공개매수 실패 이후 장내매수와 포괄적 주식교환을 병행해 지분 3분의 2 이상을 확보했고, 끝까지 버티던 주주들 역시 주당 9000원에 강제로 주식을 넘겨야 했다. 반년 뒤 같은 주식의 가치는 1만5000원을 넘어섰다. 업황 급변이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상장폐지 당시 가격이 ‘개미 털기용’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의 에코마케팅 공개매수 사례 역시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베인캐피탈은 최대주주 지분 인수와 동시에 잔여 지분 전량에 대해 공개매수를 진행한 뒤 자발적 상장폐지를 추진 중이다. 대기업뿐 아니라 PEF 역시 공개매수를 활용해 상장사의 공시 부담과 주주 보호 의무를 벗어나 비상장 체제로 전환하는 전략을 적극 구사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상법 개정 이후 이러한 자진 상장폐지 흐름이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강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 등으로 상장사의 책임이 무거워지면서, 일부 기업과 사모펀드가 “차라리 비상장이 낫다”며 상장폐지를 선택할 유인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 같은 흐름이 누적될 경우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장기 투자자에게 불리한 시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개인투자자는 물론 외국인과 기관투자자 역시 국내 증시를 장기 투자 대상이 아닌 단기 매매 시장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국회에는 이미 상장폐지와 주식교환 과정에서 자산가치와 수익가치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공정가액 산정을 의무화하는 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공개매수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가격의 적정성과 절차적 공정성을 검증할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신세계푸드와 코엔텍 사례는 자진 상장폐지가 기업 구조조정 수단을 넘어 수익 독식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며 “소액주주 보호 장치가 보완되지 않는다면 공개매수에 대한 시장의 불신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