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가 중간지주사인 HD현대사이트솔루션(사이트솔루션)의 상장 계획을 전격 철회했다. 이로써 모회사와 자회사들이 줄줄이 증시에 입성하는 ‘중복 상장’ 논란은 일단 한숨 돌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시장에선 곧바로 HD현대로보틱스의 상장 추진 소식이 흘러나오며, “본질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사이트솔루션 IPO 철회…KDB 지분 5,441억에 매입
HD현대는 최근 2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사이트솔루션 상장을 추진하지 않고 KDB인베스트먼트가 보유한 지분 19.78%를 5,441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앞서 KDB인베스트먼트는 IPO 기대감으로 전환사채에 투자해 사이트솔루션 지분을 확보했으나, 모회사 HD현대와 HD현대건설기계·HD현대인프라코어가 모두 상장사인 상황에서 또다시 중간지주를 상장하는 것은 주주 반발이 거셌다. 최근 정부가 중복 상장 규제 움직임을 보인 점도 철회 배경으로 꼽힌다.
증권가에선 이번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영수 삼성증권 팀장은 “중간지주 상장 부담을 덜고, 시장이 우려하던 중복 상장 이슈를 피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로보틱스 프리IPO 추진…또 다른 ‘상장 리스크’
하지만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HD현대는 곧바로 로봇 자회사 HD현대로보틱스의 상장을 위한 프리IPO(상장 전 지분 투자)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HD현대로보틱스는 내달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해 2,000억원을 조달할 계획이며, KY PE와 산업은행이 참여한다.
HD현대로보틱스는 지난해 매출 2,150억원, 영업이익 2억6,800만원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산업용·협동 로봇 등 신성장 산업에서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지만, 시장 일각에선 “상장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당초 회사 측은 7조~8조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내세웠으나 투자 유치 과정에서 현실화됐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사이트솔루션 상장 철회 이유와 로보틱스 IPO 추진이 충돌한다는 점이다. 이미 HD현대와 주요 자회사가 증시에 상장돼 있고, 사이트솔루션 IPO는 중복 상장 논란을 피하기 위해 접었지만 로보틱스 상장이 성사되면 그룹 내 상장사 난립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두산로보틱스 사례를 보면 로봇 기업의 높은 밸류에 대한 시장 관심은 확인됐다”면서도 “HD현대로보틱스가 상장에 실패하면 FI 지분을 되사주기로 했지만 최소 기업가치 설정이 없어 투자자 보호 장치가 약하다”고 꼬집었다.
주주가치 훼손 우려 여전
일각에서는 HD현대가 사이트솔루션 IPO 철회를 ‘주주친화적 결정’으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재무적 투자자 엑시트를 위한 구조조정일 뿐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더구나 로보틱스 상장이 이어질 경우 “결국 그룹 자금조달 수단으로 상장을 남발한다”는 주주 불신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HD현대로보틱스 관계자는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나 확정된 바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상장 목적이 신사업 육성을 넘어 지배구조 유연화와 자금 확보에 치중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사이트솔루션 철회는 정부 규제와 주주 반발을 의식한 조치로 평가되지만, 로보틱스 IPO 추진으로 중복 상장 우려는 해소되지 않았다. 그룹 차원의 자본시장 전략이 ‘상장→FI 투자→엑시트’의 반복 패턴으로 비칠 경우 주주가치 희석 및 지배구조 리스크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 보호와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명확한 상장 전략 로드맵 제시가 없으면, HD현대는 중복 상장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