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사를 해본 사람만 아는 기분이 있다.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옥 사무실에는 이제 출입증이 없어 들어갈 수 없는 처지가 된다.
문득 ‘우리 회사’라고 말하려다가 그렇게 부를 수 없다는 상황에 멋쩍은 상황이 된다. 청춘을 바쳤다고 생각한 회사는 나 없이도 너무 잘 돌아간다. 아예 나라는 사람은 잊힌 존재가 된다.
한때 동료라고 불렀던 이들이, 문자 메시지 하나 남기기 어려운 사이가 된다. 우선 호칭부터가 고민이 된다. 부하 직원이었다고 반말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옛 남자친구도 기억되는 방식이 다 다른 것처럼, 전 직장도 그런 점에서 다르다. 빈말이라도 “언제든지 돌아오라”는 따뜻하고도 어른스러운 마무리가 있는가 하면,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불쾌한 저주를 뒤통수에 남기는 퇴사도 있다.

제일기획은 한남동 사옥 로비에 창사 50주년을 기념하는 공간을 꾸몄다. 계단에 초를 다섯 개 꽂은 케이크 모양의 조형물이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제일기획 구성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혔다. 직급에 상관없이 ‘가나다’순으로. 또 제일기획을 스쳐간 전직 임직원들도 적혀있다.
옛 제일기획 직원들은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잊힌 사람인 줄 알았던 자신이 기억되는 공간에서, 제일기획은 다시 ‘우리 회사’가 된다.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이들은 그리움을 숨기지 않았다.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현 최인아책방 대표)은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함께한 그 시간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감사하고 시시때때로 그립다”라고 썼다.
제일기획 출신 백승록 IGA웍스컨설팅 대표도 “회사의 생일을 축하하는 방식도 참 크리에이티브하다”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젊고 열정 넘쳤던, 그 시절이 그립다”고 밝혔다.
이제 기업은 현재 일하고 있는 구성원뿐만 아니라, 떠난 구성원과의 관계도 생각해 봐야 할 시대가 된다. 그들은 회사 밖에서 소비자가 되기도 하지만, 회사 사정에 밝아 ‘평판’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핵심은 ‘아름다운 마무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