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옛 직원들 감동시킨 ’50살’ 제일기획

제일기획 한남동 사옥 로비에 마련된 50주년 기념 조형물 [사진=SNS 캡쳐]

퇴사를 해본 사람만 아는 기분이 있다.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옥 사무실에는 이제 출입증이 없어 들어갈 수 없는 처지가 된다.

문득 ‘우리 회사’라고 말하려다가 그렇게 부를 수 없다는 상황에 멋쩍은 상황이 된다. 청춘을 바쳤다고 생각한 회사는 나 없이도 너무 잘 돌아간다. 아예 나라는 사람은 잊힌 존재가 된다.

한때 동료라고 불렀던 이들이, 문자 메시지 하나 남기기 어려운 사이가 된다. 우선 호칭부터가 고민이 된다. 부하 직원이었다고 반말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옛 남자친구도 기억되는 방식이 다 다른 것처럼, 전 직장도 그런 점에서 다르다. 빈말이라도 “언제든지 돌아오라”는 따뜻하고도 어른스러운 마무리가 있는가 하면,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불쾌한 저주를 뒤통수에 남기는 퇴사도 있다.

제일기획의 전현직 임직원들의 이름이 가나다순으로 쓰여있다. [사진=SNS 캡쳐]

제일기획은 한남동 사옥 로비에 창사 50주년을 기념하는 공간을 꾸몄다. 계단에 초를 다섯 개 꽂은 케이크 모양의 조형물이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제일기획 구성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혔다. 직급에 상관없이 ‘가나다’순으로. 또 제일기획을 스쳐간 전직 임직원들도 적혀있다.

옛 제일기획 직원들은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잊힌 사람인 줄 알았던 자신이 기억되는 공간에서, 제일기획은 다시 ‘우리 회사’가 된다. 자신의 이름을 발견한 이들은 그리움을 숨기지 않았다.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현 최인아책방 대표)은 “이름을 기억한다는 것은 함께한 그 시간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라면서 “감사하고 시시때때로 그립다”라고 썼다.

제일기획 출신 백승록 IGA웍스컨설팅 대표도 “회사의 생일을 축하하는 방식도 참 크리에이티브하다”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젊고 열정 넘쳤던, 그 시절이 그립다”고 밝혔다.

이제 기업은 현재 일하고 있는 구성원뿐만 아니라, 떠난 구성원과의 관계도 생각해 봐야 할 시대가 된다. 그들은 회사 밖에서 소비자가 되기도 하지만, 회사 사정에 밝아 ‘평판’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핵심은 ‘아름다운 마무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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