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사 디스카운트 줄이고 밸류업 신호…상폐·주식교환·공개매수 등 방식 다양화
행동주의·상법 개정 압박 속 “중복상장 해소가 새로운 거버넌스 기준” 평가
국내 대기업들이 잇따라 중복상장 구조를 해소하며 지배구조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과거에는 자회사 분할과 신규 상장이 자본조달의 주요 전략이었다면, 최근에는 오히려 상장 자회사를 흡수하거나 공개매수를 통해 상장폐지하는 ‘역방향 구조개편’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밸류업 정책 기조가 맞물리면서 기업지배구조 전략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메리츠가 연 ‘거꾸로 전략’…합병으로 중복상장 제거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메리츠금융지주다. 메리츠금융은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을 완전자회사로 편입해 상장폐지하는 방식으로 중복상장을 해소했다. 이는 계열사를 쪼개 상장하는 기존 관행과 달리, 상장사를 지주사로 흡수하는 ‘거꾸로 전략’으로 평가됐다.
특히 조정호 회장의 지분율이 희석되는 구조였음에도 시장은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금융업 특성상 빠른 자본 재배치가 중요하다는 판단과 함께, 복잡한 배당·증자 절차를 줄여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려는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실제 발표 직후 메리츠 3개 상장사는 나란히 상한가를 기록하며 투자자 기대감을 반영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중복상장 해소가 주주친화 정책의 핵심 도구로 자리 잡은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동원그룹, ‘압도적 지배력’ 기반 상폐…총수 리스크 최소화
동원그룹은 동원산업과 동원F&B의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중복상장을 일부 해소하기로 했다. 동원F&B는 상장폐지되고 동원산업의 완전자회사로 편입된다.
눈길을 끄는 점은 총수 일가의 안정적 지배력이다. 주식교환 이후에도 김남정 회장 측 지분율은 약 79% 수준으로 유지될 전망이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높은 지분율이 의사결정 부담을 줄이며 구조개편을 가능하게 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
과거 합병비율 논란을 겪었던 동원그룹이 이번에는 비교적 주주친화적 구조를 택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다만 다른 상장 자회사인 동원시스템즈는 상폐 계획이 없어 ‘부분적 해소’에 그쳤다는 평가도 있다.
현대백화점·이마트도 가세…유통·식품업 구조개편 확산
유통업계에서도 중복상장 해소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지에프홀딩스와 현대홈쇼핑의 포괄적 주식교환을 추진하며, 상장 자회사 구조를 단순화하기로 했다. 주식교환 이후 현대홈쇼핑은 상장폐지되고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재편된다. 동시에 그룹 10개 상장사가 약 3500억 원 규모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하면서 주주환원 정책까지 결합됐다.
이마트 역시 신세계푸드를 공개매수 방식으로 완전자회사화한 뒤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 중이다. 낮은 수익성과 중복상장 구조가 기업가치 할인 요인으로 지적되자, 유통·식품 밸류체인을 통합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려는 전략이다. 신세계건설 상폐에 이어 두 번째 구조개편이라는 점에서 그룹 차원의 장기 재편 시그널로 해석된다.
‘쪼개기 상장’에서 ‘통합’으로…거버넌스 패러다임 변화
최근 대기업들의 움직임은 단순한 조직개편을 넘어 자본시장 환경 변화와 맞닿아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압박, 지주회사 디스카운트 논쟁, 그리고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맞물리면서 중복상장 구조가 기업가치 저평가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돼 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세 가지 흐름을 주목한다.
첫째, 지주사 중심의 통합 구조 강화다. 상장 자회사를 흡수하면 배당·증자 구조가 단순화되고 자본 배분 속도가 빨라진다.
둘째, 총수 지배력과 구조개편의 관계다. 동원처럼 높은 지분율을 가진 기업은 의사결정 리스크가 낮아 구조개편에 유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셋째, 주주친화 정책과의 결합이다. 현대백화점그룹처럼 자사주 소각과 함께 추진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중복상장 해소, 새로운 밸류업 표준 될 것”
시장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단기 이벤트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는 신규 상장이 기업가치 상승의 주요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상장 구조를 줄이는 것이 밸류업 전략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지배구조 단순화와 주주가치 제고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어 중복상장 해소가 대기업 구조개편의 새로운 표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