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로마 문명은 기독교와 함께 서구의 두 뿌리 중 하나다. 놀라운 점은 이들이 발전시켜 온 민주주의의 개념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권력의 분산이다. 지도자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그래서 지도자를 견제하는 의회가 있고, 의회를 견제하는 민의가 있다.
로마인들은 황제, 귀족으로 구성된 원로원, 그리고 평민으로 구성된 민회라는 세 가지 권력 축을 만들었다. 이러한 견제의 전통은 영국에서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 군주제의 전통을 낳았다. 그리고 영국의 민주주의는 미국을 거쳐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런 견제의 전통은 기업에도 적용됐다. 유럽에서 식민지 건설에 투자하는 동인도회사를 만들 때도 그런 견제의 구조가 있었다.
경영자와 그를 견제하는 이사회, 그리고 전체 주주로 구성된 주주총회가 바로 그것이다. 왕, 원로원, 민회의 전통을 기억하는 유럽인다운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제대로 된 민주화의 역사는 매우 짧다. 조선 왕조가 무너진 뒤에는 일제 강점기를 겪었고, 1948년 제헌 의회가 구성됐지만 집권자들은 독재의 유혹에 빠졌다.
현재도 대통령 중심제에서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 이뤄 낸 정치 민주화의 결과다.
그러나 경제 민주화는 더욱 갈 길이 멀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CEO, 이사회, 주주총회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CEO의 권력은 절대적이다. 심지어 그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세습되면서,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거대 기업의 3~4세 세습이 이어지고 있다.
절대적 능력을 가진 창업자의 재능이 3세, 4세 후손들의 유능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견제와 균형이라는 집단 지성을 통해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기업을 위기로 몰아넣는 일을 막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뒤처진 경제 민주화의 길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이는 CEO의 정당한 권한을 빼앗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기업은 단지 한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 구성원과 함께 존재하는 법인격, 하나의 시민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3대 세습이 ‘백두 혈통’ 운운하며 비정상적으로 들리는 것처럼, 대기업의 세습도 비정상적이다. 이를 바로잡을 때 우리 경제도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회의 책임을 강화하고, 이사회를 보다 제대로 굴러가는 조직으로 만드는 것은 경제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