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포스코의 주주 없는 주주총회

군 시절 이야기다. 기초 군사 훈련을 참관하러 별 셋을 단 사령관이 방문했다.

사령관의 동선을 따라 ‘보여질’ 것들이 골라졌다. 그리고 내가 속한 중대는 그 동선에 없었다. 사령관이 돌아갈 때까지 우리 중대는 훈련장 깊은 산 속에 그냥 있었다.

군대는 처음부터 끝까지가 ‘보여주기식’이라는 점을 깨달은 때였다. 훈련이란 목적은 사라지고 의전만 남았다.

그런데 글로벌 기업 중에서도 비슷한 마인드를 가진 곳이 있다. 세계적인 철강그룹 포스코다.

포스코 주주총회는 ‘주주 없는 주주총회’라는 독특한 콘셉트가 있다. 소액 주주라고 해도 주총장을 막고 들여보내주지 않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주총도 마찬가지였다. 주주 대신 자리를 선점한 포스코 관계자들과 이상하게도 애사심이 넘치는 ‘주주’들이 주총장을 채웠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았다. 포스코에는 ‘관행’이고 ‘전통’이라는 의미다.

그룹 회장이 오는 자리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이 나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보이는 것 같다. 행여 성난 주주가 언성을 높이기라도 하면 대단한 ‘의전 실패’일테니까.

최정우 회장이 3월 17일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제 55기 포스코홀딩스 정기주주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포스코]

아마 군인 출신 고 박태준 회장이 사실상 포스코를 일구고 오랫동안 경영을 맡으면서 생긴 문화가 아닐까 싶다. 포스코는 과거와 같은 정부 소유 기업이 아니다.

그럼에도 포스코는 가장 먼저 징용공 배상 기금에 납부를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경제개혁연대는 “포스코가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정부의 뜻에 따라 변제 재원을 부담했다면, 결코 사회적 책임을 온당한 방식으로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올해도 많은 주주들이 입구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주총장 안에서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선진화된 지배구조 TF(태스크포스팀) 발족을 계획하고 있다”면서 “외부 기관으로 구성할 것이며 지배구조에 보완할 점이 있다면 적극 반영하겠다”고 외쳤다.

그 말이 주총장에 입장도 하지 못한 주주들을 위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소유분산기업을 놓고 투명한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한 메시지는 아니었을까.

포스코는 국민연금이 9%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5% 지분을 가진 2대 주주다. 그러나 아직도 군인 출신 사장이 ‘지휘’하던 공기업 체질을 벗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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