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지금부터 그냥 당하는 거야”
드라마 <더 글로리>의 민동은이 선언한다. 어린 시절 괴롭힘으로 상처를 입은 주인공이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시원한 전개를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상처를 입고도 자신이 하지 못한 복수를 떠올리며 쾌감을 느낀다.
최고의 복수는 용서다, 무관심이다, 망각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복수가 쉽지 않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복수란 상대에게 내가 느낀 고통을 그대로 주고, 그의 선택을 후회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복수는 복수를 당하는 사람만큼이나 복수를 하는 사람에게도 많은 것을 걸어야 한다.
법치주의는 사적 복수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벌을 내릴 권한은 오로지 국가에게만 있다.
그러나 법은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알지 못한다. 판사는 법대 위에서 피고인을 내려보며, 기계적으로 선고를 내린다.
그러나 국가가 복수의 주체가 되면 어떨까. 무죄도 유죄로 만들 수 있고 솜방망이도 철퇴로 바꿀 수 있다. 그것이 우리 법치주의의 한계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 수사를 받으러 가면서도 “사적 복수에 공적 권한을 사용하면 도둑”이라고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식적으로 ‘복수’를 약속했다. 그는 “북한군의 총격에 숨진 공무원의 아들로부터 공개 편지를 받았다며. 우리 국민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반드시 밝히겠다”면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북한에 죽임을 당한 고인의 명예를 반드시 되찾아 드리겠다”고 했다.
그리고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구속됐고, 박지원 전 국정원장도 재판에 넘겨졌다. 정권이 교체됐어도, ‘적폐 청산’의 연속이다.
윤 대통령은 다른 복수도 했다. 유승민 전 의원의 경기지사 출마 선언에 최측근인 김은혜 현 홍보수석을 보냈다. 자신의 뜻을 거스른 나경원 전 의원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환경대사에서 해임했다.

권력이란 칼은 휘두르는 맛이 있다. 모든 행정부 공무원이 일사불란하게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움직인다. 입법부와 사법부도 절대 강자인 대통령의 영향권 안에 있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은 그 복수할 권한을 아낌없이 행사해왔다. 문재인 대통령 때는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교도소에 갔다. 끝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면받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친박’과 ‘친이’를 구분지었다. 진짜 친박인 ‘진박’이 누구인지를 놓고 다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논란 이후 박연차 게이트를 통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복수했다.
대통령의 복수는 이렇게 스케일이 다른 복수다. 그래서 당한 사람에게는 복수심을 불러일으킨다. 정권이 교체되면 또 다른 복수가 시작되는 이유다.
쥐와 같은 약한 동물은 다른 동물과 싸울 때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급소를 노린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맹수는 오히려 다른 맹수와 싸울 때 상대방이 죽기 직전에 그를 놓아준다. 그것이 맹수들의 생존률을 높이는 진화 전략이 됐다.
대통령은 강자다. 강자답게 행동해야 한다. 복수는 잃을 것이 없는, 언젠가 새로운 복수를 당할, 다 잃을 각오를 한 약자의 권리다.